[르포] "장애등급제 진짜로 폐지하라" 장애인들의 절규

임동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4/19 [17:22] | 트위터 아이콘 45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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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장애등급제 진짜로 폐지하라" 장애인들의 절규

임동현 기자 | 입력 : 2019/04/19 [17:22]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19일 오후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그곳에 장애인들이 모였다."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 폐지다", "서비스 지원 '조작' 종합조사표를 규탄한다". 이들이 외친 구호다. 
 
"경북 울진에서 올라왔습니다. 집에서 3년간 나오지 못하는 딸과 인사하며 나올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15년간 노력했는데 아직도 우리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구나. 어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식을 죽인다는데 나는 안 그런다고 마음먹고 나옵니다".
 
집회에 참여한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장애를 겪고 있는 딸을 집에 두고 서울에 온 아픈 마음을 전하며 "15년간 국가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등장했다. 그는 준비한 '유언장'을 낭독했다. 
 
"장애인 거주 시설은 감옥이었다. 정부는 수감하고도 보호한다고 거짓말하고 당연한 조치라고 여긴다. 무관심 속에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다. 중증장애인과 함께 산다는 것을 정부는 시기상조라고 하고 대안이 없다고 한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장애인들이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고 싶다. 나도 지역사회에서 살아야할 소중한 생명이다. 대통령이 한 '장애등급제 폐지' 약속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예산 없는 단계적 폐지는 아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과 잠깐이라도 함께 하기 위해 관에 들어간다".
 
그리고 박경석 위원장은 관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정말로 죽은 사람을 들어올리듯 상주 옷을 입은 활동가들이 그를 들어서 관 속에 넣었다. 이들은 박 이사장이 들어간 관을 들고 세종로까지 행진을 했다. 
 

19일 오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행진에 나선 장애인들. 사진 / 임동현 기자

 
그 앞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활동가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했다. 바로 비장애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 장애인들의 영정이었다. 박지우, 이재진, 송국현, 박진영, 권오진, 김주영. 박 이사장이 '잠깐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바로 그 이름들이었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던 이 날, 그들은 왜 '장애등급제 폐지'를 '가짜'라고 외쳤을까?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판단하는 척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이 발달해도, 장애인이 차별을 받고 손해를 보며 불편을 느낀다면 그 사회는 선진사회가 아니다".
 
지난 18일 정부행사로 진행된 제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 발언이다. 그는 이 발언과 더불어 "몇 가지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다"면서 "기존의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988년 제정된 장애등급제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중증인 1급부터 경증인 6급까지 분류해왔다. 하지만 장애유형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획일화된 기준이 흔들렸고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장애인들의 큰 반발을 사왔다.
 
특히 활동보조인이 정말로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장애 심사에서 문제가 되면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설사 받더라도 본인이 부담하는 부분이 있어 이를 놓고 장애인단체들의 반발과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면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일상생활 수행능력, 인지 및 행동특성, 사회활동, 가구환경 등을 살펴서 장애인이 실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파악해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들이 지금의 장애등급제 폐지를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 예산으로는 서비스가 운영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이 손에 든 장애인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 사진 / 임동현 기자

 
내년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은 1조 35억원으로 올해 예산 6907억원보다 3천여억원이 늘었다. 하지만 그에 맞춰 서비스 단가와 서비스 대상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 시간은 늘어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공개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기존 장애등급제와 동일하게 의학적 관점에 입각한 기능제한 수준만을 평가하고 당사자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애인단체들은 이를 두고 "장애등급제와 유사한 '조작' 조사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장애인 문제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 시설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것도 장애인들의 불만이다. 신규입소가 여전히 허용되고 경기 성심재활원, 부산 동향원 등 범죄시설에 대한 폐쇄조치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회장은 "활동보조의 경우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받아야하고 특수한 환경을 고려해 개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복지부의 조사표는 당사자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면서 "자부담 폐지, 연령제한 폐지 등을 줄기차게 이야기했지만 복지부는 예산 부족, 도덕적 해이 등을 이유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잘못된 정책이 7월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이 집회를 주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장애인 이동권 문제, 활동보조인 문제, 특수학교 문제 등을 놓고 목소리를 내왔으며 거리 집회는 물론 서울역 쇠사슬 시위, 마포대교 점거 등으로 비판을 받으면서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내오고 있었다.
 
이날도 세종로 영결식을 놓고 종로경찰서와 마찰이 있었다. 허가한 신고보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그만 세종로를 막고 행진을 시작하라'는 경찰의 안내방송이 나온 것.
 
하지만 이 방송을 들은 박명애 한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안하면 또다시 방구석에 틀어박혀야한다".  다시는 방구석에, 시설에 틀어박히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진 오후였다. SW
 
ldh@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임동현 취재부 기자입니다.

"미래는 타협하지 않는 오늘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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