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평양랭면’ 먹는 법

박명윤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08/22 [14:20] | 트위터 아이콘 44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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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평양랭면’ 먹는 법

박명윤 논설위원 | 입력 : 2019/08/22 [14:20]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냉면(冷麪)이다. 얼음 조각을 띄운 육수(肉水)에 담긴 면 위에 계란 반쪽과 편육을 얹고 식초와 겨자를 넣어 후루룩 먹으면 속이 시원해 진다. 필자가 자주 찾는 냉면집은 필자의 아호(雅號) 靑松과 같은 연희동 소재 청송(靑松), 북한산 만포면옥, 공덕동 을밀대(乙密臺), 을지로 우래옥(又來屋) 등이다.


필자와 ‘우래옥’과의 인연은 1973년 1월부터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인도네시아 사무소에 근무했을 당시 자카르타(Jakarta) 시내 관광호텔인 Asoka Hotel 1층 ‘우래옥’에서 운영한 Korea House에서 점심시간에 한식을 맛 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인도네시아(印尼, Republic of Indonesia)는 1945년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으며, 북한과는 1964년에 외교수립을 했으며, 한국과는 1973년에 국교를 맺었다. 


요즘 웬만한 냉면은 한 그릇에 1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경동시장 ‘다미옥’에선 5천원에, 이태원 ‘동아냉면’에서는 6천원에 냉면(물냉, 비냉)을 맛 볼수있다. 오늘(8월 17일) 점심시간에 60년전 대학생 시절에 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에서 활동한 옛 친구들과 대한극장 인근에 있는 ‘필동면옥’을 찾아 시원한 냉면을 즐겼다.

먼저 만두(1만2천원)와 제육(2만4천원)을 먹은 후 냉면(물냉면ㆍ비빔냉면 1만2천원)을 먹었다. 평양식 만두는 먹음직스러운 크기에 꽉찬  만두 속맛이 제격이고, 편육은 질 좋은 고기를 잘 삶아서 새우젓 양념에 찍어 먹는 것이 일품이다.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 2019’에 등재된 ‘필동면옥’ 냉면육수는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깔끔한 맛, 그리고 섬세한 육향(肉香)과 은은한 감칠맛이 있다고 논평했다.


오늘 만난 친구 9명은 1950년대말-60년대초에 클럽활동했으며, 매달 맛집(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을 찾아 오찬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서울 근교 장어(長魚)맛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1958년 11월 3일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12명이 창립한 파인트리클럽을 필자가 1961년 인재양성ㆍ사회봉사ㆍ국제친선을 목표로 한국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 of Korea, 총재 박명윤)으로 확대 개편하여 서울ㆍ대구ㆍ부산ㆍ광주 파인트리클럽에서 현재까지 약 1만2천명 회원을 배출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요즘 SNS를 통해 ‘냉면 마니아’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냉면 중에는 가정에서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수박 냉면’이 있다. 준비물은 수박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1개에 1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동치미 물냉면’이다. 우선 둥근 모양의 수박 조각을 4-5개 만든다. 남은 수박은 믹서기에 물 한 컵 반 정도와 육수를 넣고 갈아준다. 냉면은 끓는 물에 3분 정도 삶은 뒤 차가운 물에 식힌 다음 면을 그릇에 담는다. 미리 준비한 수박 육수를 부어주고 마지막으로 수박 조각을 띄워 주면 달콤한 수박 맛이 곁든 시원한 ‘수박 냉면’이 완성된다. 기호에 따라 오이채, 삶은 달걀, 편육 등을 고명으로 얹어주면 좋다.


조선 후기 문인ㆍ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1849년에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관서(關西,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고 적었다. 그는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냉면(冷麪),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ㆍ밤, 쇠고기ㆍ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麪)”이라고 했다. 앞의 냉면은 ‘물냉면’, 뒤의 골동면은 ‘비빔냉면’으로 본다.


냉면은 평안도뿐 아니라 황해도에도 유명한 지역이었다. 황해도 곡산 부사(府使)를 지낸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한 지인에게 아래와 같은 시를 적어 줬다. “(음력) 10월 들어 서관(關西)에 한자나 눈이 쌓이면/ 겹겹이 휘장에 푹신한 담요로 손님을 붙잡아둔다네/ 벙거짓골(삿갓 모양의 전골냄비)에 저민 노루고기 붉고/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김치 푸르네.”


냉면(冷麵ㆍchilled buckwheat noodle soup)은 말 그대로 차가운(冷) 국수(麵)다. 요즘은 냉면을 더운 여름철에 즐기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래는 추운 겨울철 음식이다. 당시 평양 사람들은 냉면을 여름이 아니라 주로 겨울에 먹었고, 이따금 봄에도 먹었다. 이북(以北)이 고향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에 냉면을 말아먹는 것이 진짜 ‘냉면 맛’이라고 한다.


냉면을 겨울철에 먹은 이유는 냉면 국수를 만드는 메밀은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재배됐는데, 음력 7월 초순에 심어 가장 늦개 수확했다고 한다. 당시 평안도 사람들은 한여름에 밀을 수확해 만두와 국수를 만들어 먹고, 겨울이 되면 늦가을에 추수한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당시엔 겨울에 먹는 냉면이 ‘제철 음식’이었던 것이다.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은 자체에 끈기가 없기 때문에 밀가루나 전분(澱粉, starch)을 섞거나, 뜨거운 물로 반죽해서 치대야 한다. 밀가루나 전분의 비율과 치대는 기술에 따라 면의 끈기와 질감이 달라진다. 메밀국수는 메밀 80〜90%, 밀가루나 전분 10〜20%의 비율로 섞인 것이 적당하다. 냉면의 열량(1인분 한 그릇)은 물냉면(계란 1/2개) 435kcal, 비빔냉면(계란 1/2개) 442kcal, 회냉면(홍어회) 490kcal이다.


냉면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진찬의궤(進饌儀軌), 부인필지(夫人必知) 등 옛 문헌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조선시대부터 먹은 음식으로 추측된다. 냉면의 고향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등 이북(以北)이며, 특히 1911년에 평양면옥상조합(平壤麵屋商組合)이 생길 정도로 평안도는 ‘냉면의 나라’라는 별칭이 붙었다. 한편 황해도 사리원의 냉면가게들도 1928년에 7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조합’을 결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평양냉면’은 주로 동치미 국물을 사용하였지만 소고기ㆍ돼지고기ㆍ닭고기ㆍ꿩고기 등을 이용한 고기육수도 사용했다. 평양냉면은 툭툭 끊기는 면발과 심심한 육수가 맛의 포인트이다. ‘황해도 냉면’은 물냉면이지만 평안도보다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를 많이 사용하여 진한 고기 맛이 나며, 간장과 설탕을 넣어 단맛이 난다.


1920년대 함경도의 대중적인 외식(外食)은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전분(澱粉)국수였다. 1930년대에 감자 전분 면발에 식초로 삭힌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한 ‘회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함흥냉면’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새콤한 회가 맛의 포인트이다. 냉면은 북한의 6ㆍ25남침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失鄕民)들이 서울 남산 일대와 남대문 주변에 정착하여 냉면집을 운영하면서 한국인도 즐겨 먹기 시작했다.


한복진 등이 1998년에 발간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100가지’란 책에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조리법과 맛이 크게 다르다로 소개한다. 즉 평양냉면은 메밀을 많이 넣고 삶은 국수를 차가운 동치밋국이나 육수에 만 ‘장국 냉면’이다. 한편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넣어 가늘게 뺀 국수를 매운 양념장으로 무치고 양념한 홍어회를 얹은 ‘비빔냉면’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식 물냉면이 대부분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함흥냉면 체인점이 전국에 퍼지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북한의 대표적 음식점인 평양 옥류관(玉流館)은 냉면을 하루에 약 1만 그릇을 공급한다. 지방에서 평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냉면을 배급한다고 한다. 이에 평양 고려호텔 냉면이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통일부의 ‘대북 지원사업 전문가’ 자격으로 지난 2007년 10월 27-30일 평양과 황해남도 신천지역에 출장을 갔을 때 고려호텔에서 냉면을 먹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평양냉면은 북한 평양냉면에 비교해 고명(garnish)이 적다. 북한에서는 고명이 달걀지단,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무생채, 무짠지, 소금에 절인 오이가 층층이 쌓이며, 고춧가루를 육수에 갠 후 파, 마늘을 다져 넣은 양념장도 식탁에 올린다. 메밀은 금방 소화되기에 고명을 넉넉하게 올리며, 북한에서는 껍질째 제분한 메밀과 감자전분을 섞기 때문에 국수가 검은빛이 돈다.

 

북한 독재정권의 김정일(金正日, 1942-2011) 국방위원장이 옥류관을 현지지도하면서 “랭면을 먹을 때 식초는 면 위에 뿌리고, 겨자는 육수에 풀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평양랭면 먹는 법’ 처럼 보급되었다고 한다. 식초를 면 위에 뿌리면 식감이 탱글탱글해 진다도 하지만 냉면 마니아(mania)들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똑같다고 말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메밀은 위(胃)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五臟)의 찌꺼기를 훑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메밀은 쌀이나 밀가루보다 아미노산(amino acid)이 풍부하며, 필수(必須)아미노산(트립토판ㆍ트레오닌ㆍ리신 등)이 다른 곡류보다 많다. 메밀에 함유되어 있는 루틴(lutin)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므로 고혈압에 좋으며, 또한 메밀은 변통(便通)이 잘 되어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SW

 

pmy@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박명윤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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