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이어지는 업무지시 ‘카톡 지옥’

현지용 기자 | 기사입력 2019/08/27 [16:50] | 트위터 아이콘 444,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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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이어지는 업무지시 ‘카톡 지옥’

현지용 기자 | 입력 : 2019/08/27 [16:50]

퇴근 후 또는 휴가 도중 이메일, 메신저를 통해 업무지시를 받는 노동자 인격권 침해 문제는 2016년 방지법 발의로 여야 호응을 모두 얻었다. 그러나 처벌조항이 없는 강제성과 완고한 기업 문화로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에 계류돼 임기만료 자동폐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퇴근 후 또는 휴가 도중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업무지시를 받는 인격권 침해가 여전함에도 이를 방지할 관련 법과 관행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IT업계에서 일하는 A씨(29)는 퇴근 후에도, 휴가 도중에도 상사로부터 빗발치는 메신저 업무 공지와 지시에 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업무 부담을 근무시간이 아닌 때이를 강제로 알도록 하는 것에 A씨는 사내 불이익을 염려로 불편하다는 내색조차 내지 못하는 입장이다. 심지어 주말에는 메신저 그룹 통화 채팅방에 들어가 단체 음성채팅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있다. 

 

이러한 하소연은 A씨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7일 구인구직 전문 웹사이트 사람인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여름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963명 가운데 휴가 중 업무연락을 받은 직장인은 절반 가량인 49.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연락은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전체 중 겨우 5% 수준이었다. 

 

휴가 중 임에도 업무 연락을 받은 이유(복수응답)로는 △‘급한 일일 것 같아서’ 53.7%, △‘받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43.2%,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서’ 31.4%,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27.6%, △‘복귀 후 추궁을 당할 수 있어서’ 12.9% 순이었다. 회사로부터의 불이익을 염려하는 응답만 합하면 56.1%에 달한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는 것 또한 인격권 침해라는 인식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인식 변화에도 이를 막는 관련 법과 상급자의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업무 연락에 대응한 이들 10명 중 9명(87.9%)은 ‘바로 일을 처리했다’ 답했으며, 4명(37.9%)은 ‘휴가 기간 도중에 회사로 출근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인격권 침해와 달리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 국가는 퇴근 후 업무지시 금지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6년 2월부터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 업무시간 외 이메일, SNS, 전화 등으로 업무 관련 연락을 차단하는 ‘엘 콤리(El Khomri)’법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안티스트레스(Anti-stress)’법 입법을 추진해 사회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퇴근 후 전화·이메일·SNS로 이어지는 업무지시 부조리를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2016년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를 막는 강제성 있는 법이 없어 해당 제안은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사진 / 고용노동부

 

반면 한국은 여야 이견이 없음에도 관련 법들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최초 논의는 2016년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시작됐다. “근로시간 외 시간에 전화, 메시지, SNS 등으로 업무 관련 지시를 내리면 안된다“는 내용은 여야에서도 호응을 얻어, 국민의당 시절 이용호 의원도 유사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제 19대 대선 과정에서도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근절 대책 마련을 공약으로 거는 것에 문재인 현 대통령이 앞장섰으며,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선 후보도 이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논의와 법안은 대선이 지난 후 상임위에서 계류된 상태다. 20대 국회의 임기만료가 다가오면서 자동 폐기될 예정인 1만 여건의 법안에 해당 법안도 섞일 것이란 전망이 크다. 

 

퇴근 후 카톡 금지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없지 않다. 단속 가능성 여부, 해당 법을 어겨도 상대를 신고하기 어려운 법적 보호 및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 시민의 생명·안전을 다루는 직업에 예외 조항을 두느냐는 등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업무시간이 끝난 후 개인시간에 업무지시를 하는 것은 실례라는 문화나 관행이 서양과 비교해 적은 상황이다.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와 노동조합은 2014년 4월 퇴근 흐 이메일 발송 금지 협정을 맺었고, 독일은 금속노조의 입법화 요청으로 안티스트레스법을 추진했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기업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법으로만 제한하는 방식은 불완전한 법 조항으로 부작용과 반발만 낳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법정책학회는 고용부 의뢰로 제작한 ‘근로시간외 업무연락 금지 및 출퇴근기록 의무제 연구’ 자료에서 “퇴근 후 업무 지시를 입법 등으로 전면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근참법상 노사협의 의결사항으로 하거나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에 필수 기재돼야할 사항으로 추가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를 노사 협의의 수준으로 머무르게 해 적극적인 개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6년 고용부는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발표하며 관리자의 인식 개선과 행동 변화를 제안하며 그 다음해에는 카카오 본사를 방문해 관행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안에서 끝나는 논의 수준은 높은 당위성에도 아무 것도 달라지게 하지 않았다. 강제성과 처벌조항이 명시된 법이 없는 한, 말 뿐인 제안은 기업의 의무사항 또한 아니기에 현재까지 퇴근 후 ‘카톡 지옥’을 막는 논의는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현지용 취재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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