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르포②] 지우고, 감시하고...독재가 두려워하는 레논 벽

현지용 기자 | 기사입력 2019/10/24 [17:32] | 트위터 아이콘 44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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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르포②] 지우고, 감시하고...독재가 두려워하는 레논 벽

현지용 기자 | 입력 : 2019/10/24 [17:32]

지난 19일 촬영한 홍콩 애드미럴티 ‘레논 벽(Lennon Wall)’의 모습. 친중파 시민들에 의해 전부 훼손당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담긴 레논 벽이 친중파와 홍콩 경찰에 의해 지워지고 감시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일 홍콩 구룡반도 일대는 홍콩 민주화의 열망과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홍콩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폭력 진압 및 의문사, 백색테러, 비민주적 선거제, 복면금지법과 같은 표현의 자유 억압 등 홍콩의 민주화를 탄압하는 일들이 5개월 연속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인 정부의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처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레논 벽(Lennon Wall)’은 홍콩 민주화 운동의 메시지를 포스트잇으로 적어 벽에 붙였다. 낙서나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래피티 행위는 정부에서 강력히 처벌하고 있어, 낙서가 아닌 포스트잇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체코 프라하의 레논 벽에서 영감을 얻고 2014년 홍콩 학생들이 조성한 레논 벽은 이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나타낸 상징물이자 명소가 됐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섬 애드미럴티 역을 시작으로 주요 역사(驛舍) 및 장소에 자발적으로 레논 벽을 만들고 있다. 

 

지난 19일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물로 첫 시발점이 된 애드미럴티 ‘레논 벽(Lennon Wall)’을 방문한 모습. 레논 벽은 친중파 시민들에 의해 전부 반달리즘을 당했다. 여기에 홍콩 전투경찰이 5인 1개 조로 순찰을 돌며 포스트잇 부착행위를 저지하고 있었다. 사진은 에드미럴티 역 바닥에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요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의 글자를 따라 붙였던 접착제 자국. 사진 / 현지용 기자

 

지난 1일에는 애드미럴티 역 입구와 레논 벽 근처에 시위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보행로에 도배하고 이를 밟고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동시에 레논 벽은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투신한 사람들, 홍콩 경찰에 의해 다치고 숨지거나 의문사 당한 시민들의 이름을 적는 등 추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홍콩 정부와 홍콩 경찰, 친중파 및 중국 정부는 레논 월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 눈엣가시가 된 레논 벽에 대해 홍콩 정부는 직접 레논 벽을 철거하려 하나, 이는 홍콩 시민들의 반발을 부른다. 때문에 친중파 시민들은 스스로 ‘청소행위’라 부르며 레논 벽에 ‘반달리즘(Vandalism, 문화재·예술품·시설 등 공공물을 파괴·훼손·낙서해 폭력적 반항, 문화 거부를 하는 행위)’을 매번 저지르고 있다. 

 

심지어 아예 시민이나 취재기자가 레논 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하도록 레논 벽 인근에서 친중파 시민들이 테러를 저지르기도 한다. 지난 8월 20일 레논 벽을 취재하던 여 기자 1명과 시민 6명은 친중파 남성에게 칼부림 테러를 당해, 해당 기자는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현지인들끼리도 이를 염려한 조언이 도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본지 기자가 애드미럴티 역 레논 벽을 방문한 당시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저항과 추모의 메시지로 가득하던 레논 벽의 포스트잇·전단지들은 모두 제거됐다. 계단과 외벽 및 천장 군데군데 풀과 본드 자국만이 남아 이곳에 얼마나 많은 메시지들이 붙어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했다. 바닥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요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의 풀 자국이 남아있기도 했다. 

 

지난 19일 홍콩 침사추이 문화센터 인근에서 시민단체가 연 경찰폭력 사진전의 한 장면. 홍콩 시민들이 경찰의 강경 진압 장면을 찍은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홍콩 정부와 경찰은 친중파의 레논 벽 반달리즘보다 더 나간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레논 벽 입구에는 ‘낙서금지’. ‘포스트 부착금지’라는 현판을 달고 레논 벽을 조성하려는 시민의 의지를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애드미럴티 레논 벽 일대에는 중무장한 전투경찰 병력이 배치돼 5인 1개 조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경찰은 레논 벽에 대한 시민 간의 다툼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을 이유로 달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무력으로 포스트잇 부착을 막으려 한다는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전투경찰은 레논 월 일대와 부착 흔적을 촬영하던 본지 기자를 발견하자, 즉각 불심 검문을 하는 등 매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포스트잇 한 장 속 적힌 작은 저항의 메시지에 대해 전투경찰까지 동원하는 조치는 홍콩 정부 스스로에게 그것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훼손당한 레논 벽을 보면서 홍콩 시민의 열망, 민주화의 흔적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겠다는 홍콩 정부의 21세기 기록말살 행태를 볼 수 있었다. 독재 체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갖는 두려움만큼 저항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현지용 취재부 기자입니다.

"미래는 타협하지 않는 오늘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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