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양극화된 정치논쟁, 보수적 비전도 진보적 비전도 없다

오세라비 작가 | 기사입력 2019/11/04 [09:41] | 트위터 아이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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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양극화된 정치논쟁, 보수적 비전도 진보적 비전도 없다

오세라비 작가 | 입력 : 2019/11/04 [09:41]

사진 / 셔터스톡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모든 것이 양극화된 정치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영은 양쪽으로 나뉘어 상대를 향해 “청산, 적폐, 괴멸, 섬멸, 박멸” 등 극단적인 표현을 난무하는 시대다. 최근 우리 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강성 페미니즘운동으로 인한 청년 세대의 남녀 갈등, 반일운동,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관련 의혹으로 시작된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전투적인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은 더욱 대항적 세력을 형성해 격류에 휩쓸리는 현상을 맞게 될 것이다. 

 

좌파냐? 우파냐? 답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진영논리에 따라 규정되어 진다. 좌파가 아니라고 답하면 우파가 되고, 우파가 아니라고 답하면 좌파로 분류된다. 여기에 중도층과 온건한 옵티미스트(Optimist, 낙관주의자)들이 낄 여지는 없다. 

 

좌·우 아니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진영논리에 벗어나 있다 해서, 혹은 정치적 견해를 나타내지 않는 것도 그 자체로 정치에 관여하는 방법이다. 중도층 역시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좌·우 진영논리에 따르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정치적 가면을 쓴 채 정치적 게임에 능하지 않은가. 이들은 정치적 권력과 이익을 얻기 위해 집단주의, 거칠게 말하면 ‘패거리 집단주의‘로 향한다. 정치적 가면을 쓰고 이런 현상을 획책하는 것보다, 중도 성향이 오히려 건강한 자세일 수도 있다. 

 

현대 정치의 새로운 양극화된 정치논쟁은 좌파 진보주의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즉 PC운동이다. PC주의는 성별·인종·소수자를 차별하는 표현이나 언어에 대항하는 운동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란 명분으로 새로운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대화에서 혐오 표현, 차별 용어를 찾아내 제재를 가하며 고발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한다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적·억압적이고,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움츠리도록 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운동과 PC운동의 결합은 정체성 정치와 급진적 개인주의를 더욱 강화시킨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면 곧바로 성차별주의자, 여성혐오주의자, 반성평등주의자 딱지가 붙여진다. 여기에는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 민주적인 정치 논쟁이 설 자리가 없다. 서구에서는 특히 대학생과 젊은 층 가운데 정치적 올바름 경향으로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받고 불쾌해하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의 이들을 ‘민감한 눈송이’라 부른다. 

 

정치적으로 좌파의 가치와 우파의 가치조차 모호해 졌다. 전통적으로 우파는 개인의 자유, 시장자유주의와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며 세금을 낮추고 공공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좌파는 큰 정부에 비중을 둬 부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포함해 세금을 높이고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며 사회적 권리가 뒷받침되는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겉보기만 그럴 뿐 국내 좌파나 우파의 가치와 구분은 불명확하고 비슷하다. 결국에는 부유한 상위층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를 낳는 공통점이 있다. 좌파가 청빈하다는 말도 철지난 얘기로 이미 부자들이 즐비하다. 좌파에게서 정치적으로 명료함도 찾기 어렵고 무엇보다 좌파 권력 중심부에는 일명 ‘캐비어 좌파’들이 대세를 이룬다. 

 

캐비어 좌파란 프랑스 극좌파 일간지로 출발한 ‘리베라시옹’의 편집국장이기도 한 로랑 조프랭의 저서 『캐비어 좌파의 역사』에서 명명한 부르주아 좌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책은 “캐비어 좌파란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양심적이라고 간주하는 사이비 좌파, 입으로 정의를 말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 좌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만,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않는 좌파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한국식 용어로 ‘강남 좌파’와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좌파와 일반 좌파 사이에는 치명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부르주아 좌파가 정치, 문화, 매스컴 식자층을 형성하며 그들만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파의 가치지향점이 무엇인가? 시장자본주의, 경쟁만이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자율에 맡기는 시장, 사회적 의무 없는 사적 소유, 사회적 침해를 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였던가? 그러나 과연 한국의 우파가 우파적 가치에 충실한가? 우파 역시 민중영합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반대로 필자가 겪었던 좌파는 누구보다 자본주의적이었다. 이들은 우파와 차이가 없었으며, 우파 또한 좌파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양극화된 정치논쟁이 지속되지만 피라미드 형태로 치면 맨 꼭대기 상층부 집단의 생활방식, 인적네트워크는 사방에 서로 얽혀있다. 그렇다면 중도계층과 소시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들의 삶과 현실을 반영한 제도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를 영속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바로 이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정치적 힘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양극화된 정치논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이들의 번영을 위한 정치가 돼야한다는 점이다. 좌파·우파가 각자 나뉘어 열혈지지자들을 위한 부흥회 성격의 세력 형성에 치중하고, 그들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좌파정당이나 우파정당의 존재 목적은 의회권력과 집권을 위해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중도층과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이는 매우 간단한 이치다. 중도 시민들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보수적 비전도, 진보적 비전도 부재한 시대도 없다. 양극화된 정치논쟁은 각자 발목잡기일 뿐이다. 중도를 향한 비전 제시와 최소한 차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가치가 작동하는 정치가 돼야한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누가 중도층과 어깨동무를 할 것인가? SW

 

murphy803@hanmail.net

시사주간 오세라비 작가입니다.

"미래는 타협하지 않는 오늘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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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임금격차개사기 2019/11/12 [12:05] 수정 | 삭제
  • 인헌고 사태는 페미니즘 강요 교육과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PC충, 그리고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성차별주의자 낙인찍기와 진영논리의 총집합체라 볼 수 있죠.
  • 만주안시성 2019/11/07 [03:15] 수정 | 삭제
  • 응원합니다! 비동의간음죄 발의한 나경원 김현아 김수민 신보라 남인순 신용현 조배숙 등 13명 아웃! 청년부신설 여가부폐지 찬성 페미 국회의원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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