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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명량대첩로 문화·왜란 유물 우르르~
기사입력: 2017/10/12 [13:37] 최종편집: 트위터 노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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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기자]
전남 진도 명량대첩로에서 도자기 등 유물 120여점과 토기, 도기, 백자가 출수됐다. 임진왜란 때 것으로 추정되는 총통(銃筒), 석환(石丸), 노기(弩機) 등이 해전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2~2016년 4차례 수중발굴조사와 탐사로 토기, 도자기류, 총통 등 유물 790여점을 발굴했다. 지난 5월부터 5차 발굴조사에 들어가 장식과 화려한 문양이 특징인 12~13세기 비취색 고려청자와 강진에서 제작된 접시, 잔, 유병 등을 찾았다.

조사해역 일부구간(200×180m구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온 닻돌들도 주목된다. 그동안 60여점이 발견됐다. 당시 이 해역이 배들이 쉬어가는 정박지나 피항지였다는 증거 유물이다. 중국식 닻돌, 즉 나무로 만든 가벼운 닻을 물속에 잘 가라앉히려고 매다는 돌은 진도 벽파항이 태안 마도, 군산 고군산군도와 함께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항구였음을 보여준다.

 

명량대첩로 해역은 수중 시야가 좋지 않다. 수중초음파카메라와 스캐닝소나를 동원, 이상체와 유물 집중매장처로 추정되는 곳을 탐사한 이유다. 수중초음파카메라는 탁도가 높고 어두워 수중시야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서 수중과 해저면에 노출된 문화재를 탐지하는 휴대용 장비다. 수중에 설치하는 스캐닝소나는 음파로 주변 해저면의 모습을 2차원으로 볼 수 있는 장비로 제토구역과 노출유물 확인에 용이하다.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은 남해와 서해를 잇는 길목이다. 많은 배가 왕래하는 해상항로의 중심 구역이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전라·경상 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곡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수시로 드나든 해상 고속도로였다.

태안 난행량, 강화도 손돌목, 장산곶 인당수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험조처(險阻處)인데, 가장 항해가 어려워 배들이 자주 난파된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시기 이순신 장군이 조류를 이용해 왜군을 격파한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4㎞ 떨어져 있다. 관련 유물을 통해 격전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명량해전 전 소규모 해전이 벌어졌다. 발굴해역 남쪽의 벽파항에는 과거 벽파정이 있었다. 벽파정은 고려 희종 3년(1207)에 주로 중국을 왕래하는 국제 사절을 위로하고자 세운 정자다. 해상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물이다.

명량대첩로 해역 서쪽은 만(灣) 형태다. 과거 간척이 이뤄진 곳이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물이 넓은 범위에 흩어져 묻혀있고, 물속에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0~0.5m) 장기적인 연차 조사가 필요하다. 이번 5차 조사는 11월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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