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암살설·단심가는 조선시대 창작 산물”

황채원 기자 | 기사입력 2019/04/14 [11:37] | 트위터 아이콘 451,383

“정몽주 암살설·단심가는 조선시대 창작 산물”

황채원 기자 | 입력 : 2019/04/14 [11:37]

14일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펴낸 학술지 ‘역사와현실’에서 김인호 광운대 교수는 고려시대 말기 문신인 포은 정몽주(1337~1392)의 개성 선죽교 암살설 및 태종 이방원과 나눈 ‘단심가’가 조선시대에 창작된 것이라 주장했다.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고려 말기 문신인 포은 정몽주(1337~1392)가 개성 선죽교에서 태종 이방원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4일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내는 학술지 ‘역사와 현실’ 최신호에 따르면 김인호 광운대 교수는 ‘정몽주의 신화와 역사소비’라는 논문을 통해 정몽주는 후대에 충절의 상징으로 신화화됐으며 선죽교 타살도 허구라고 주장했다.

 

영일 정씨인 정몽주는 고려 1360년 문과로 장원급제 한 후 주자학 보급에 기여하며 빈민 구제 및 교육 진흥에 힘쓴 인물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돼 사후 문충공이란 시호를 받은 인물로 알려져있다.

 

김 교수는 “정몽주는 자신의 집 근처 태전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16세기 후반 최립이 지은 시에서 정몽주의 사망 장소에 선죽교라는 장소가 처음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 교수는 “정몽주 살해 장소라는 말과 선죽교가 살해 장소로 정해진 이유는 알기 어려우나 ‘착한 대나무 다리’라는 선죽교의 고유 의미와 조선시대 당시 유행한 중국 춘추전국시대 고사 가운데 죽은 군주의 복수를 위해 다리 아래 숨어 암살을 시도한 협객 예양(豫讓)의 이야기와 결합해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정몽주 암살 이전 이방원과 만나 나눴다는 ‘단심가’(丹心歌)도 1617년 간행된 해동악부 등을 근거로 선죽교 암살설과 단심가를 통해 정몽주가 충(忠)의 표상으로 조선 후기에 창작된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SW

 

hcw@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황채원 취재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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