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등 6건 문화재 됐다
상태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등 6건 문화재 됐다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8.05.08 12:48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등록문화재 제713호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蝙蝠)’. 사진 / 문화재청

[시사주간=황영화 기자문화재청은 8일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등 총 6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이번에 등록이 결정된 문화재는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조일관계사료집' '윤동주 친필원고'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蝙蝠)' '장효근 일기' 등 5건과 근대 건축 유산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1건 등 총 6건이다.

등록문화재 제710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 1945년 8월17일까지 개최한 정기회와 임시회 회의록 등이 포함된 자료다. 임시의정원 의장을 4차례 역임한 홍진(1877~1946)이 해방 후 1945년 12월1일 환국할 때 국내로 갖고 들어왔다. 그가 별세한 뒤, 유족이 보관하다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했다. 임시의정원이 생산한 기록물 중 현존하는, 귀한 원본 자료다. 임시의정원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활동 내용, 변천 과정 등을 보여준다.  

등록문화재 제711호 '조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다. 조선총독부 등에서 발간한 일제 선전물이 식민통치 실상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일관계사를 삼국 시대부터 연대별로 다뤄 일본 침략성을 실증하고, 경술국치 이후 식민탄압 잔혹성과 3·1운동 원인·전개 과정 등을 담았다. 총 4책으로 구성했다. 당시 100질이 만들어졌으나 현재 국내에서 완질로 전하는 것은 이 독립기념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등록문화재 제712호 '윤동주 친필원고'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유일한 친필원고다. 개작 등을 포함해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씌어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와 같이 개별 원고를 하나로 묶은 시집 3책과 산문집 1책, 낱장 원고 등으로 이뤄졌다. 고인의 유고와 유품을 갖고 있던 친지들이 광복 직후 북간도에서 서울로 와 형의 자취와 행적을 찾아다니던 동생 윤일주에게 전해줬고,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이 고향을 떠나며 갖고 온 것이 더해졌다. 이렇게 모인 유품들을 60년가량 윤일주(1985년 작고) 가족이 보관하다가 2013년 2월 연세대에 기증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등록문화재 제713호 ‘편복’'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이원록, 1904~1944)가 남긴 시 ‘편복’의 친필원고다.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대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일제의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으나 해방 후인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돼 일반에 알려졌다. 이육사의 시 중에서 가장 중량 있고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편복’의 친필원고는 유족이 소장해오다 경북 안동시 이육사문학관에 기증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등록문화재 제714호 '장효근 일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장효근(1867~1946)이 1916~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한문체 일기다. 장효근은 제국신문, 만세보 등 창간과 발행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다. 3·1운동이 추진되던 1919년 2월27일 천도교가 운영한 인쇄소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여 매를 인쇄해 배포한 혐의로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유족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그의 일기에는 일제강점기 사회상과 국내외 정세, 독립운동 관련 사실이 기록돼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등록문화재 제715호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은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의 거주공간 확보를 위해 ‘소(牛) 막사’를 주거시설로 변용한 것이다. 당시 피난민 삶을 잘 보여준다. 산업화 시기 인근 지역에 조성한 공장, 항만 등으로 유입한 노동자 생활공간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기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천주교 광주대교구청–본관, 헨리관, 식당동' 등 총 2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48년 착공해 1951년 완공된 뒤 광주의대 본관과 전남대 본부로 사용됐다. 현재 전남대 의학박물관으로 쓰인다. 동시대에 건립된 대학 건축물과 비교할 때 6·25전쟁 중에도 꾸준히 공정이 진행한 점, 모더니즘의 세련된 디자인, 조적조와 철근콘크리트 슬라브 연결 적합성 등 역사적, 건축사적 측면에서 등록문화재 가치가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청-본관, 헨리관, 식당동'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681호로 등록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과 함께 1961년 대건신학교 건물로 건립됐다. 본관을 중심으로 브레디관, 헨리관, 식당동 등 4동 건물이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에서도 상호 연결된 유기적 공간 구성을 한 점은 다른 건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천주교사적 의미와 함께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등 2건에 관해 30일 등록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SW

hy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