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완장’과 ‘꼰대’들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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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완장’과 ‘꼰대’들은 재미있었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3.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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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회 본회의 장면. 사진 / 이원집 기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한 학급의 왕으로 군림하던 반장 엄석대의 몰락은 새로운 선생 김정원의 출현으로 시작된다. 옛 담임선생의 무관심, 때로는 비호와 무관심 아래 장기간 권력을 누려왔던 엄석대의 몰락 예고편은 칠판에 적힌 수학문제를 풀어보라는 김 선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자 김 선생이 의심을 하게 되는 것.
 

그러다 결국 대리시험을 쳐준 사건이 발각 나고 엄석대는 김 선생에게 처벌을 당하는 과정에서 교실을 뛰쳐나간다. 그날 밤 학교 교실에 불을 지르고 사라진 엄석대는 먼 후일 형사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본 주인공(한병태)의 눈에 ‘초라한 영웅의 몰락’이란 실루엣으로 남겨진다.
 

‘초라한 영웅의 몰락’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는 우선 산업화 세대의 몰락이다. 이 몰락은 시대적 소명(calling)이다. 산업화 세대들은 세월의 이끼가 저절로 만들어 놓은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했다. 그저 입만 벌리고 그 과실을 향유하고자 하기만 했다.
 

나무에 거름을 주고 객토를 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 개량하지 못했다. 이제 산업화 시대의 가치는 낙화처럼 떨어졌다. 다시 찬란한 봄이 온다 하더라도 그 낙화는 이제 예전처럼 붉은 태양을 불태우듯 그리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비에 젖은 듯 초라해질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비동질화 하며 달려오던 민주화 세대의 종말 역시 눈앞이다, 이는 엄석대의 몰락이 비리를 낱낱이 까발리던 급우들의 입에서 진행됐듯이 곧 자신들의 입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 또한 시대의 소명이다. 그건 민주화 세대 역시 ‘또 다른 엄석대’요 ‘완장’이며 ‘꼰대’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자유한국당을 두고 '꼰대정당'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나 다시 돌아온 이해찬 등 그들 역시 ‘완장’이며 ‘꼰대’에 다름 아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구세대와 다르다. 현실 감각의 패션으로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 이들은 민족적 담론이나 이상적 해방론보다 개인적 자유와 공존적 분배를 앞세운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떠돌던 패션이 아니라 파리나 뉴욕을 점령하려는 이들에게 ‘김씨 왕국’을 상전처럼 받드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일부 민주화 세대의 시대착오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감상주의적 보따리 장사도 봄날의 낙화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양 진영의 꼰대나 완장 모두 이제 깨끗이 손 털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란 말이 있듯 철 지난 공염불은 시줏간에나 가서 하라. 성취감보다는 물질적 보상이나 다른 보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에게 2.0 민주주의나 골통 종북주의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사실 이데올로기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 ‘兩 꼰대’들은 그걸로 장사를 해먹었다. 골이 패여 가는 줄도 모르고 죽도록 해먹다가 산업화-민주화 세대 모두가 폐업 일보직전에 있는 것이다. 장사가 안 되면 문을 닫던지 신장개업해야 한다.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쇠테’는 본질을 깨닫고 세계의 질서에 부합하려는 순간 벗겨진다. 누군가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지난 역사는 이제 저물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는 우리를 이만큼 일으켰다. 兩 꼰대들은 재미있었다. 숨도 가빴다. 그 영광은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만 아듀를 고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엄석대의 잔상을 후세들에게 남기지 말자.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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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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