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광풍에도 홍매화는 심층에서 표층으로 몸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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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광풍에도 홍매화는 심층에서 표층으로 몸을 내민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3.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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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우리나라와 사회에 밀어닥친 광풍은 매섭고 날카롭다. 적폐수사가 그렇고 성스캔들이 그러하며 미국과 북한의 널뛰기도 그렇다. 가만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은 마음을 이리저리 할퀴었다. 그 마음을 다스리려 발버둥치다 보니 머리를 스치는 (야부선사 수행시) 한 수가 있었다.

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적적요요본자연 寂寂寥寥本自然

하사서풍동림야 何事西風動林野

일성한안려장천 一聲寒鴈唳長天

고요한 밤 산당에 말없이 앉아 있으니

적적하고 고요함이 본래 자연 그대로인데

무슨 일로 서풍이 임야를 흔들더니

외기러기가 먼 하늘에서 구슬피 우는구나

산당의 고요한 밤에 침묵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앉아있으니 내 마음이 착 가라앉은 주위의 적요함과 하나가 된다. 고요함 그 자체 속에 고요한 내가 그 고요함을 잊어버리고 고요하게 앉아있다. 그런 경지에 다가가는 순간, 서쪽에서 불어온 광풍이 세상을 온통 휘저어 놓는다. 외기러기 슬픈 울음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지니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일어나 더욱 아프다. 한마음 깨치면 부처요, 한마음 미()하면 중생이라 했지만 마음을 어디 둘 데 없다.

그러다 자유행복학교 회원이신 무위자연님이 쓰신 待春(봄을 기다리며)이란 글을 발견했다.

엄동가희우 嚴冬過喜雨

죽영벽어천 竹影碧於天

잔설소빙곡 殘雪消氷谷

홍매상불면 紅梅尙不眠

엄동설한에 단비가 지나가니

대나무 그림자 하늘보다 푸르구나

잔설은 차가운 계곡으로 스러지는데

홍매는 설레어 오히려 잠 못드네

선객이 낮게 읊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어지는 단비를 매개로 하늘 보다 더 푸르른 대나무의 추상같은 절개를 보여주면서, ‘어디 둘 데 없는 마음을 달래준다. 엄동설한은 잔설을 스러지게 하고 홍매를 피어나게 하여 아득할 것만 같은 저편 언덕에서 봄이 오게 한다. 잠 못드는 홍매는 우리의 마음이 진리의 모체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함장가정(含章可貞)하여 겨울을 이겨내는 홍매화는 울울한 마음을 표층으로 밀어내 봄을 열 것이다. 그림/주장환(晩晴) 화선지 27×51mm 墨, water color. 

홍매는 그리하여 마땅히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게 된다(應無所住而生其心)”. 잔설은 녹으면서(殘雪消) 한 순간에도 머물지 않고 물로 변해 계곡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고이지 않으려면 멈추지 않아야 한다. 고인 물은 썩고야 만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걸림이 없는 마음’, 즉 집착을 벗어나는 마음이다. 집착하면 괴롭다. 그것은 대나무 그림자(竹影)처럼 어둡고 칙칙하다.

그래서 홍매를 우리는 기다린다. 홍매는 이미 지천이다. 안으로 머금고 머금다가 끝내 터져 나오는 울음, 그것이 봄의 홍매화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함장가정(含章可貞)’이라 했다. 무한한 꿈을 안으로 간직하고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홍매는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이 시의 제목인 待春은 육조 혜능의 게송 보리본무수 명경역무대 본래무일물 하처유진애(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오, 거울 또한 거울이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이 일겠는가)’보다 스승 오조 홍인이 혜능에게 준 게송 유정래하종 인지과환생 무정기무종 무성역무생(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뜻이 있는데서 씨가 내리고 원인이 있는데서 과가 도로나네, 뜻이 없으면 씨도 없나니. 성품 없으므로 남도 없다)에 가깝다.

마음이 있다 없다, 깨끗하다 더럽다 분별하는 자체가 사실은 부질없다.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하지만(홍인의 상좌승 신수의 게송), 닦아야 할 대상적 존재로서의 마음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無一物).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무일물에 매달리다보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은 객체화 될 수는 없지만 사실 구름처럼 온갖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 만약 이러한 생멸문(生滅門)을 도외시 하고 진여문(眞如門)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전도의 위험이 있다.

여기서 홍매는 유정(有情)이다. 바로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어쩌구 하는 유정천리란 노랫말 같은 그런 것이다. 인간인 이상 정이 있다. 중생(衆生)은 다 마음이 있는 것이다. 설레어 오히려 잠 못드는 홍매는 바로 군더더기 없는 유정이다.

그렇다. 버닝썬도 타타 타타 재가 될 것이고 핵도 타면 재가 되리라. 시절이 하 수상하다 하나 그 또한 과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침내 새로운 홍매화가 울울의 심층에서 표충으로 힘차게 뻗어 나오리라.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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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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