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예의와 조양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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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예의와 조양호 회장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4.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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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 / 대한항공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로마 최고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바로 직전에 죽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장례식 겸 개선식을 거행해주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하는 말 중 이런 것이 들어있다.

개선식이란 죽은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언제나 옛 카이사르 황제에게 그의 대머리와 여성편력을 두고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약점들을 험담하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은 자라면 뭐랄까 무덤 속 삶의 개시식(開始式)같은 것, 영광의 수세기와 망각의 수천 년을 앞에 두고 그 몇 시간의 소란하고 성대한 의식의 권리가 있는 법이다. 죽은 자의 운이란 실패에서조차도 보호되는 법이다. 그의 패배마저 승리의 빛을 얻는 것이다. 트라야누스 황제를 위한 개선식은 파르티아인에 대한 다소 의심스러운 승리를 기념하고자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에 걸친 존경할 만한 노력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의 결점들마저 이젠 대리석 흉상이 실제 얼굴 모습과 완벽하게 닮은 것을 알아보게 하는 특징들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죽은자에 대한 배려요. 광의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인 것이다. 만물의 죽음에는 하늘의 뜻이 들어 있는 법이다. 실패와 비난, 무능조차도 바람에 실린 티끌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를 숭앙하고 기리며 영광의 흔적들을 반석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그것이 죽은자에 대한 예()인 것이다.

죽음과 함께 한 인간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공과(功過), 영욕(榮辱) 같은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게 된다. 백거이의 말처럼 달팽이뿔 위에서 무엇을 다툴 것인가?(蝸牛角上爭何事)’. 그러나 남아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냉혹하다. 그들은 죽은 자가 무엇을 남겼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한진의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자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들썩이고 있다. 누가 더 지분을 많이 상속받는지, 경영권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 등 다양한 해석으로 주가는 사흘째 크게 뛰어 올랐다. 마치 죽은 자의 운이란 실패에서조차도 보호되며 그의 패배마저 승리의 빛을 얻는 것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죽은 자의 유산으로 산자가 이득을 취하는 것, 이런 것이 세상이다. 죽은 자의 업적이 길위에 우뚝 서 있으려면 수없이 많은 끍힘과 덧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멍에는 끈질기고 아프다. 영욕을 따로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영욕은 함께 가는 것이다. 조양호 회장의 죽음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자에게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한 말처럼 그 몇 시간의 소란하고 성대한 의식의 권리가 있는 법이다.” 최소한 그것만큼이라도 지켜주는게 살아있는 자의 양심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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