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명예 황금종려상…알랭드롱에게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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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명예 황금종려상…알랭드롱에게 “미안”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5.2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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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알랭 드롱이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에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AP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오랜만에 좀 한가한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스 배우 알랭드롱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알랭 드롱, 한세기를 풍미한 세기적 배우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마곡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석양을 뒤로 하고 씩 웃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나도 젊었을 때 알랭 드롱이 나오는 영화라면 무조건 다 보았다. 여자 친구가 그놈(?)을 너무 좋아해 한때는 죽여버릴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어서 25여 년 전 칸영화제 기자단 인터뷰에서, 그리고 20여 년 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알랭 드롱은 나이가 들자 영화보다 사업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는 국내화장품 회사와 향수제품을 공동 마케팅하는 일과 알랭 드롱 코냑을 수입하는 비즈니스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우린 기자와 배우 관계로 만났는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내가 그가 출연한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무전기(당시엔 핸드폰이 없었다)를 든 보디가드 7~8명과 비서 등을 데리고 나타났는데 마치 무슨 갱두목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인생무상이라 했으며 세월은 붙잡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얼굴 주름은 나의 옛 여자 친구가 봤으면 눈물을 흘렸을 만큼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아무튼 난 그와 대담을 하던 중 회견장에서 먼저 나와 버렸다. 그 이유는 나는 배우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그는 사업 이야기만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뷰를 중단하고 일어서자 그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경호원들은 문 앞에서 나를 가로 막으며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난 화를 내며 기어이 나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행동이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가 요즘은 경력의 끝을 넘어 인생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사후에 받을 상을 살아있을 때 받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그렇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내가 잘 아는 리유니트 와인의 김창권 회장(그는 알랭 들롱 코냑을 국내에 수입했다)의 말을 빌리면 알랭 드롱은 와인을 무척 즐겼다. 와인을 마실 때 잔을 들곤 새끼손가락을 구부리고 입안에 털어넣었는데 와인을 입안에서 몇차례 굴리곤 삼켰다고 한다. 아무튼 그를 다시 만난다면 지금이라도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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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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