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로베스 피에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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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로베스 피에르를 다시 생각한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6.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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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 피에르. 사진 / 위키백과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대중은 합리적 주장을 토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오직 정서적 호소에만 반응하며 추론능력이 없다. 군중을 선동하려면 논리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동기에 호소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 한 말이다. 고전이 된 이 말을 가장 잘 사용한 인물을 꼽으라면 한 둘이 아니다. 히틀러, 로베스피에르, 모택동. 레닌, 김일성 일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과 아내 에바 페론,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아내 이멜다 등등,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이들 중 독일의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없애는 자가당착을 저질렀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과 수용소군도의 모델을 만들었다고 비난한 로베스 피에르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와 루이 16세의 인연도 묘하다. 파리의 명문 학교인 루이르그랑 학원에 다니던 17살 때, 그가 나중에 단두대에 피를 묻힌 루이 16세가 학교를 방문하자 학생 대표로 환영사를 한 일도 있다.

학교를 졸업하자 고향인 아라스로 돌아온 피에르는 변호사가 된다. 그러다 검사로 위촉되었으나 사형을 구형하는 일이 싫어서 그만뒀다고 한다. 그리고 힘 없고 가난한 서민을 위한 변호사로서 점차 명성을 쌓아갔다. 이런 그의 행동이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고 순수한 휴머니즘에서 일어났다면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고 나타난 그의 광기어린 행동은 그의 전력에 침을 뱉을 만하다.

루이 16세는 죽기 전에 이렇게 외쳤다.“나의 죄상을 조작한 사람들을 용서한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신이여, 돌봐주소서.”

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당이 루이 16세를 죽이려 한 가장 큰 이유는 구체제를 뒤엎은 결정적인 문제였던 식량난이 혁명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였다. 오히려 먹고사는 문제는 더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자신들의 무능을 덮어버리려면 루이 16세라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피에르 역시 자신이 애용하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놀랍도록 다양하다. 이른바 인권 변호사였던 그가 정권을 잡자 누구보다 더 앞장서서 피를 뿌리고 다녔으니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바로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다.

만약 피에르가 순수했던 인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는다 하더라도(실제로는 내가 곧 국민이라고 말할 정도로 오만했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 정의라고 믿는 일을 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 25만 여명의 죽음에 앞장섰던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이 자비입니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입니다. 폭군의 잔인함은 그저 잔인함일 뿐이지만,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입니다.”

귀스타브 르 봉의 말처럼 피에르는 대중의 정서를 잘 파고 들어 선동가로서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상기시켜 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내세우면서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의지를 완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썩은 것을 도려내려 하다가 환자를 죽이는 일은 금물이다. 용서와 화합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개혁도 없다. 부디 좋은 개혁이 되었으면 좋겠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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