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다툼 끝에 오는 시간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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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다툼 끝에 오는 시간과의 싸움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7.03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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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다툼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것이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고 적자생존의 참맛을 보여줬다는 주장은 일견 이다.

공자가 군자는 남과 경쟁하지 않고 무엇을 쟁취하려고 싸우지 않는다고 한 말의 대척점에는 토마스 홉스가 있다. 그는 시민론에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 늑대다고 갈파했다. 그는 인간은 자기보존의 실현에 있어서 타자보다 우월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힘을 보다 많이 획득하는 경쟁상태에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참혹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 상호의 계약에 의해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고 하는 국가를 구축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인간은 언제나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헤겔 역시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전쟁이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아리아인을 천재민족으로, 유대인을 기생동물로 규정하고 싹쓸이의 터를 닦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고기잡이를 나간 노인이 오랜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다 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와 함께 귀환한다.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생사를 건 싸움에서 지면 상어가 우글거리는 음습한 바다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시지프스의 노역과도 같은 싸움을 그만 둘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며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철저한 단독자(單獨者)임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신 앞에서, 그리고 인간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깨끗하고 참된 내면세계를 제시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다툼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우리 곁을 찾아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 이런 시도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 지루하고도 질긴 숙명과도 같은 다툼은 100년의 성찰을 통해서도 해결되기 어렵다.

나무가 그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가만 두지 않는다식의 남 끌어내리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때문이다. 바로 우리 정치인들이 대표적 케이스다. 오죽했으면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국회를 떠나며 코미디 공부 많이 했다”, “내가 많은 정치 단체 발기대회에 참석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했겠는가?

석가, 공자, 예수 같은 성인들은 외관상의 혼돈과 내면의 합일을 통해 한층 승화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다툼이 없는 성자나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화강암으로 무장된 심층을 뚫고 그 무엇으로도 마모시키지 못하는 시간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이제 한해의 반이 지났다. 불쾌한 날 보다 행복한 날이 더 쉽게 희미해 진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지난 반 년 동안에도 싸움만 해 오지 않았는지 되새겨 볼 때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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