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볼모가 된 국보 훈민정음 상주본...숭례문 화재와 무엇이 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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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볼모가 된 국보 훈민정음 상주본...숭례문 화재와 무엇이 다르나
  • 김도훈 기자
  • 승인 2019.07.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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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 씨가 갖고 있는 훈민정음 헤례본. 경북 상주에서 발견돼 상주본으로 불리고 있다. 2015년 배 씨 자택의 화재로 일부가 불타고 젖어 보존 상태가 나쁘다. 오른쪽 사진은 배익기씨. 사진 / 뉴시스,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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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도훈 기자]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혜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국가의 보물 중 하나다. 1443년 만들어져 한글의 원리 바탕이 어떤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으로 한반도의 국어, 문화, 역사 등 여러 부문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훈민정음 혜례본은 1940년대 안동에서 발견돼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안동본’이 있으며, 최근 국가 반환을 거부한 문제로 논란을 빗고 있는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동일한 판본의 ‘상주본’이 있다. 

상주본은 당해 7월 경북 상주시 낙동면의 고서수집가 배익기 씨가 집 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발견됐다. 안동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으며 안동본에는 없는 당시 연구저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으로 1조원 이상의 가치를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주본이 사실 골동품상 조 모씨의 것이며 배 씨가 이를 훔친 것이라며 소유권에 대한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이에 2012년 대법원은 조 모씨에게 소유권이 있다 최종 판결을 내리고 조 씨는 같은 해 문화재청에 상주본 기부식을 가진 후 숨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상주본은 안동 광흥사 나한상 내 있던 유물이었으며 이를 문화재 전문 절도범 서 모씨가 1999년 조 씨에게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소유권은 광흥사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이 와중에 상주본을 갖고 있는 배 씨는 상주본의 행방을 밝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검찰은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배 씨에 징역 15년을 구형하고 2012년 대구지방법원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대구고등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리자 검찰의 상고 끝에도 2014년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배씨는 2015년 언론에 국가가 상주본을 1000억원 이상 가격으로 매각할 시 이를 넘길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2017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될 시 상주본을 국가에 넘길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지난 15일에는 JTBC 인터뷰에 출연해 상주본의 존재 여부조차 명백히 밝히지 않으며 명예 회복을 강조하고 나섰다. 

현재 상주본은 2015년 배 씨 자택의 화재로 여백의 일부가 타고 그을려 물에 젖는 등 상태가 매우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물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의 가격 흥정에 따른 높아진 금액으로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의 진짜 가치는 그것이 소중하다는, 소중한 이유에서 나온다. 즉 보물에 대해 겹겹이 쌓여져온 역사가 그 보물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국보인 상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종이와 먹으로 쓰인 한 권의 고서를 물질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한반도 역사라는 인간 사고의 정신적 영역에서 그 가치와 고귀함을 가지는 것이자, 세월의 거듭함에도 보존돼온 역경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 씨의 사례처럼 회복되고 싶어 하는 개인적인 명예와 영달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명예를 위해 국보를 볼모로 잡는 행위는 한 나라의 역사와 그 역사 안에 깃든 민족을 인질로 잡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불과 수년 전 국보인 숭례문 화재처럼 개인의 재산을 위해 국보를 불태운 것과 배 씨의 태도가 과연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지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겠다. SW

 

k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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