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건설 “공사 책임자지만 사고 책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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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건설 “공사 책임자지만 사고 책임은 없다”
  • 조규희 기자
  • 승인 2019.08.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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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부재’가 부른 근로자의 애통한 죽음…서울시 작업자 고립 대처 노력 ‘유명무실’
중부지방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린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작업자 3명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조규희 기자] “현대건설 소속 현장소장이 현장 책임자이긴 하지만, 사고 책임자라고 볼 수는 없다” 지난달 31일 발생한 ‘목동 빗물펌프장’ 현장 책임자를 묻는 질문에 현대건설 관계자가 밝힌 답변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시스템 운영 권한 및 주체는 양천구에 있다”라며 “현대건설은 시설 공사만 했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운영 주체인 양천구가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현대건설의 입장이다. 

공사 중 발생한 사고는 맞지만 ‘수문 개방’이 직접 사고 원인이라는 게 현대건설의 논리다. 관계자는 “수문 개방을 제어할 수 있는 제어실에 관리자가 있었다면 수문이 개방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상시에 해당하는 우기에, 그것도 개방 수준을 낮게 설정한 상황에서 제어실 자리를 비웠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마철이라는 비상시에 개폐방식을 자동 설정하고, 제어실을 비운 게 사고 발생의 직접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논리로, 그렇다면 왜 위험한 시기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굳이 작업을 강행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현대건설은 “작업 전 기상청 예보나 특보를 확인하는데, 작업 당일 호우 특보가 없었고, 비도 안 왔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업을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공정이 정해져 있는 현장에서 장마철이라고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느냐?”며 “운영 주체가 제대로 통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였다. 

양천구는 “담당자 출근 전이라 책임자가 부재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시범 운영 시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상 시 수문을 막을 권한이 양천구에만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제어실 출입 권한이 있다는 의미는 수문을 막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권한여부를 떠나 비상시 선조치 후보고를 할 수 있는데, 운영 주체가 양천구라는 이유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통제 권한이 없다며, 통제권 여부로 책임 공방을 하는 반면 정작 통제권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양천구에 작업 여부에 대한 통보를 하지 않은 것. 

사고 당일 역시 작업 발생 여부는 현대건설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현대건설은 “작업은 현장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뿐, 작업 여부를 양천구에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건설과 운영이 분리된 현장 프로세스로 인해 '작업자'만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서울시‧양천구‧현대건설이 포함된 소통 채널이 있었음에도 작업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안타깝다. 본 채널에서는 시운전 등 수문 개폐 여부를 공유했다. 현대건설에서 작업자 투입 여부를 공유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작업 여부만 공유됐어도 수문이 개방됐을 가능성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더불어 책임 소재도 훨씬 분명해졌을 것이다.

◇ ‘시공능력 2위 사업자’란 명성에 스스로 먹칠

모든 작업 시 최우선 순위는 작업자의 안전이다. 그러나 작업자의 환경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어권자에게 작업자의 투입 여부를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문 제어권이 없다는 의미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수문 개방 위험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시공능력 평가에서 전체 건설사 중 2위에 자리한 현대건설의 현주소가 이 같은 위험 속에서 작업을 해 왔으며, 이 같은 프로세스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는 면에서 ‘안전불감증’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현대건설은 “다시 강조하지만 우천 중 작업이 강행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작업이 시작된 7시에 호우예보가 있었다면 절대 작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을 뿐 제어권이 없는 위험 속 작업이 정당한지, 이를 운영권자와 왜 소통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서울시에선 지난 2016년 ‘돌발강우 시 하수관로 내부 안전작업 관리 매뉴얼’을 발간했다. 본 매뉴얼에는 작업 수행 시 ▲무선으로 안전원과 작업자 간 수시 이상 유무를 확인할 것 ▲기상청 일기예보 실시간 수시 확인할 것 ▲강수확률이 50%이상이거나 육안으로 하늘에 먹구름 확인 시 작업 중단 후 즉시 철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본 시설 공사는 본 매뉴얼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전했다.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본 시설은 수문 개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매뉴얼에는 ‘작업자가 하수관로 내부에서 작업을 수행할 경우 적용된다’고 명시돼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수문 개폐여부와 상관없이 본 매뉴얼을 적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우기철 국지적 돌발 강우 시 하수관로 내 작업자가 고립되는 등 인명사고 위험이 높아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고 돌발 강우 시 신속하고 효과적 대처를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매뉴얼 작성 목적을 근거로 목동 빗물펌프장 작업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매뉴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인재’로 규정하는 이유는 ‘폭우라는 천재지변에 대비할 작업 규정이 무시됐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지난 달 31일 목동 빗물펌프장은 ▲무선으로 안전원과 작업자 간 수시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없었고 ▲통신이 안 돼 기상청 일기예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며 ▲비는 오지 않았지만 강수확률이 50%이상이었고, 육안으로 하늘에 먹구름이 확인되는 상황이었다.

즉, 본 매뉴얼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도 안이한 현대건설의 안전의식을 비판할 명분으로는 충분한 자료다. 건설업계 큰 형님 격인 현대건설이 운영권이 양천구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고의 책임은 운영권자인 양천구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구차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2명과 현대건설 근로자 1명이 사망한 사고다. 최상위 건설사업자라는 명성에 스스로 먹칠하는 행동은 삼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기상청이 강한 비를 경고한 당일, 통신도 확보 안 된 전쟁터 같은 터널로 하청업체 근로자 2명을 투입한 행위가 과연 정당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SW

ck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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