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혁명은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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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혁명은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11.0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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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셔터스톡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러시아 아나키스트 네차예프.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악령의 표트르재탄생시킨 인물로 인간의 권력의지를 무시무시하게 보여주는 괴물이다. 대학시절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한 신부에게 빠져 아나키스트가 대단한 멋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실 또라이 혁명가, 찌질남이다. 고집세기로는 당나귀 뒤발굽 같아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이런 인간은 어린 시절 배운 조잡한 내용을 평생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고 미화하며 남의 의견에 침을 뱉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표트르의 입을 통해 혁명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혼돈을,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그런 혼돈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모든 회원들은 하나같이 서로 감시하고 밀고할 의무가 있다. 첫째 과업은 교육, 과학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과학과 재능의 높은 수준은 불필요하다. 노예들은 평등해야 한다. 세계에는 오로지 복종 만이 결핍돼 있기때문이다. 교육을 받겠다는 욕망 자체가 이미 귀족적이다. 우리는 음주와 유언비어 밀고를, 이전엔 듣도보도 못한 방탕을 퍼트릴 것이다. 온갖 천재들을 꼬드겨서 아이처럼 만들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자신의 나라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현실은 어떠한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은 오로지 민중을 등에 업고 나라를 평등하고 정의로운 그리하여 낙원같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눈이 어둡다. 그러나 그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며 정의는 자신들만의 정의다. 그러니 낙원의 현실은 어림도 없다. 낙원과는 한참 떨어져 존재하는게 현실이다(서울 종로에 낙원상가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들은 현실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사회를 재단하고 제 멋대로 하려 든다. 결국 무지한 대중들의 무심한 선택으로 정권을 잡으면 정적을 적폐로 몰고 마타도어로 압살하며 권력기관과 언론 등을 장악하고 독재로 흘러 마침내 공포정치로 타락한다.

네차예프가 한 짓을 하나만 살펴보자. 1869년 그는 인민의 재판이라는 혁명 결사를 조직했으며 회원 한 명이 혁명 사업에 시쿤둥하다는 이유로 살해해 시체를 연못에 유기했다. 혁명의 목적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악령에 다름 아니다.

이런 더러운 악령들이 일으킨 혁명은 반드시 반혁명을 초래하게 된다. 볼셰비키 혁명, 모택동 문화혁명, 캄보디아 킬링필드, 베트남 혁명 등이 그랬다. 그러나 그 처참한 피의 댓가에도 불구하고 결국 종착지를 반() 자본주의로 돌릴 수 밖에 없게 됐다.

혁명은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혁명이 진행되면 될수록 오히려 처음보다 더 못해진다는 말이 있다.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곱씹어 지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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