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동간 성폭행이 '자연스런 모습'? 복지부의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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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동간 성폭행이 '자연스런 모습'? 복지부의 망언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12.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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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일 국회 보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일 국회 보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경기도 성남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의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만 5세 딸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갑내기 남자아이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형법에서는 형사미성년자라 처벌이 안 된다고 한다. 아이는 너무 불안해하는데 가해자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가해자,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고 하고 이사도 못가겠다고 한다. 어린이집에도 강제적으로 중재역할을 할 수 없다"면서 "아동간 성폭력사고 시 강제력을 가진 제도를 마련하고 가해아동을 처벌할 수 없지만 그 부모를 통해서 적극적인 피해회복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부모의 호소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청원 하루만에 청와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20만명을 돌파했다. 가해자의 아버지가 선수로 뛰고 있는 한국전력 럭비단 홈페이지 응원게시판에는 그 선수를 비판하는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경찰은 피해 아동 학부모와 면담 후 내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성남시와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 관련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문기관 협의체에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피해 아동의 보호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더불어 추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 부처와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 큰 물의를 일으켰다. 박능후 장관은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질문에 "아이들의 성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른들이 보는 관점에서 성폭력 같은 관점으로 보면 안 되고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런 모습'일 수도 있는데 과도하게 표출됐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폭행을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런 모습'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들은 많은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성폭력을 두둔한 박능후 장관의 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이 사건에 대한 장관의 견해가 아닌, 아동의 발달에 대한 전문가의 일반적인 의견을 인용한 것이며, 사실관계 확인 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다"라고 해명하면서 "피해 아동과 부모,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발언으로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약 박 장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 내용을 확인했다면 아무리 전문가 소견을 인용했다고 해도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 남는다. 6살 여자 어린이가 몸과 마음에 입은 엄청난 상처를 생각했다면, 청원글을 통해 피해 아동이 어떤 상태인지를 인지했다면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장관의 입장에서는 '사실 확인'이 먼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 치우친 글이기에 상황을 과장되게 설명했을 수도 있고 그렇기에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다해도 아동간 성폭행을 '발달 과정'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성 인지 부재'란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고 '2차 가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당시 장관에게 질문을 했던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마추어적 시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뭐가 잘못이냐는 태도를 보이는 장관이 제대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낙담하고 분노하고 있다"며 박 장관을 비판했다. 

복지부가 문제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해결을 약속했지만 은연중에 드러난 '아동 성폭행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발언으로 인한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동의 문제를 단순히 '아이들끼리 문제'라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그것이 무책임한 발언의 충격을 그나마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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