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추다르크’ 등장에 부동산 시장이 오금 저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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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추다르크’ 등장에 부동산 시장이 오금 저린 이유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12.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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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검찰이 핵폭탄을 맞은 듯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사람들은 그가 이전에 언급한 ‘토지 국유화’ 주장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 ‘중국식 사회주의 정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발언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던 예민한 부분이다.

추 후보자의 그간 행적이나 말들을 회상해보면 부동산 시장이 오금 저리는 이유를 알만하다. 지난해 6월 추 후보자(당시 대표)는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책 출간기념 토론회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있는 금융자본이 산업에 들어가 있지 않고 산업 동맥으로 쓰이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 이전인 2017년 9월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토지세를 높여 지주들이 땅을 팔도록 유도하고, 이를 국가가 사들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헨리 조지가 살아 있었다면 사용권은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식’이 타당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타당하다”고도 했다.

강남훈 당시 한신대학 경제학과 교수 등 9명이 공동으로 펴낸 ‘헨리 조지~’는 시장과 자본주의를 제대로 만들려면 토지제도를 정의롭게 만드는게 최우선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 경제가 심각한 불평등과 불안정, 저성장에 시달리는 근본 원인은 토지와 부동산을 잘못 다뤄왔기때문이라고도 한다.

헨리 조지의 적자들인 일부 ‘조지이스트’들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증대는 경제발전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또 빈곤, 실업, 사회적 불평등, 자유 등의 개선이 없으면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없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 불리는 이 경제사상은 19세기 말 영국 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조지주의 운동’의 주인공이자 ≪진보와 빈곤≫을 쓴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에게서 비롯됐다. 이 사상을 강교수에게 소개한 사람이 강원도에서 수도공동체 예수원을 설립한 고 대천덕(Ruben Archer Torrey Ⅲ) 신부라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러 방법을 이용해 소득 재분배를 제한하고 게임의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나가는 ’지대론(地代論)‘에 의거하고 있다. 즉 인구의 증가나 기계 사용에 의한 이익은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한 사람에게 대부분 흡수되어 버리고 그 결과, 빈부 차 확대, 지대 상승, 이자 임금 하락 등이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토지 공유가 필요하고,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사회복지에 충당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이로인한 돈(稅收)은 총재정지출을 충당하고도 남으므로 다른 조세는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헨리 조지가 외쳤던 당시의 피폐했던 영국과 오늘날 우리나라의 토지 개념은 세월만큼 달라졌다. 사실 토지공개념을 실시하고 있는 중국 부동산 재벌의 토지 보유집중도는 혀를 차게 한다. 심지어 시진핑 주석 큰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는 부동산개발 등을 통해 수천 억원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에 대한 사유권을 착취적인 소유권으로 간주해 소멸시키고, 토지소유제를 국가소유권과 협동단체소유권으로 구분했던 북한의 오늘날 형편도 중국과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토지를 농장 소유주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던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이 백인 농장을 무상몰수하는 토지법을 시행하다가 큰 코 다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백인 토지 무상몰수’를 외치다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세계는 급속하게 변했다. 우리 현실을 당시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집착에 불과하다. 수렵사회가 현재 사회보다 좀 더 공유 공동체이고 평등한 경향을 지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게 좋다면 우리는 원시시대로 가야한다. 그리로 가면 토지는 무한정 자기 것이다. 추 후보자 말처럼 헨리 조지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타당하다”면 ‘추다르크’는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잔다르크’처럼 불멸이 되고도 남는다.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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