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몰락으로 점철된 김우중의 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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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몰락으로 점철된 김우중의 83년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12.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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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영 신화'와 '방만한 경영' 찬사와 비난 받아, '세계를 향한 도전'은 인정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2017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2017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샐러리맨 성공 신화', '세계경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등의 수식어로 대표되기도 하지만 대우그룹의 해체와 함께 분식회계 혐의로 해외도피 생활과 복역을 하면서 '실패한 경영인'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故 김우중은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1967년, 자본금 500만원과 5명의 직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해 창립 첫해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하며 급성장 가도를 달린다. 당시 그는 동남아시아에서 '타이거 킴'으로 불렸는데 이는 직접 샘플 원단을 들고 대우의 첫 브랜드인 '영타이거'를 알리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이후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고 1973년에는 대우실업과 영진토건을 인수한 대우개발을 합쳐 (주)대우를 출범시켰다. 한국기계(대우중공업),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을 인수한 뒤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내며 한국 경제 발전을 주도했고 남미와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며 해외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샐러리맨 신화', '세계경영'이 대우의 상징이 됐으며 1983년에는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9년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내놓았고 이 책은 6개월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신이 이루어낸 신화를 소개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향한 원대한 꿈을 가질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젊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책 제목은 김우중의 신화와 꿈을 압축하는 의미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또 '세계경영'과 기초과학 지원, 오지 의료 지원 등을 소개하는 TV 광고가 호평을 받으면서 대우는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대우와 김우중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의 부채 규모는 89조원에 달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이었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와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결국 1999년 대우의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됐고 그룹은 해체됐다.

41조에 달하는 분식회계 규모가 드러나면서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고 2005년 6월 입국한 뒤 2006년 징역 8년 6월,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당시 그는 입국을 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을 통해 "그룹의 경영을 총괄했던 제가 좀 더 일찍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이제는 실패한 기업인으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그의 말이 '세계는 넓고 도망갈 곳은 많다', '세계는 넓고 훔칠 것은 많다'는 식으로 바뀔 정도로 그는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제계 2위로 '세계경영'을 부르짖었던 김 전 회장의 초라한 모습에 많은 이들은 '무리한 경영의 결과'라며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대우의 몰락은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 당시 정부와의 마찰로 인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지만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방만한 경영을 하고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대우그룹이 쓰러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게 알려져 있다"면서 대우그룹의 해체가 '경영실패'가 아니라 김대중 정권에 의한 의도된 해체라고 주장했다.

故 김우중 전 회장은 2010년부터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천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며 '제2의 김우중' 만들기에 전념해왔다. 대우 측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베트남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후 건강이 나빠졌고 지난해 연말부터 증세가 악화되어 그가 설립했던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세계 경영의 신화'라는 찬사와 '무리한 경영,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김우중 전 회장의 굴곡진 83년의 삶은 결국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제 역사에 맡겨야하겠지만 한국경제 부흥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빼놓으면 안 될 정도로 세계를 향한 그의 도전 정신만큼은 인정해야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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