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3초·‘일관된 진술’로 결정한 성추행 유죄, 5초 만에 끝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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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1.3초·‘일관된 진술’로 결정한 성추행 유죄, 5초 만에 끝난 정의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12.12 17: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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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집 성추행 논란...12일 대법원, 5초 만에 ‘유죄’
CCTV 추행 가능성 ‘1.3초’, 法 “피해자 진술 일관”
안희정 판결, 여성단체·언론 ‘북적’...곰탕집 사건은 ‘한산’
‘무죄추정의 원칙 수호’ 당당위 “법치·법권위 무너졌다”
대법원은 12일 대전의 한 식당에서 일어난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논란’에 대해 상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CCTV 영상 및 성추행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논란에도 법원은 1·2심을 비롯해 대법원까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무게를 싣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 / 현지용 기자
대법원은 12일 대전의 한 식당에서 일어난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논란’에 대해 상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CCTV 영상 및 성추행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논란에도 법원은 1·2심을 비롯해 대법원까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무게를 싣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12일 지난해 10월 실형 판결로 시민사회에 논란을 일으킨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상고 기각, 유죄로 최종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지난해 9월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남편이 성추행범으로 구속돼 징역형을 받았다’는 아내의 호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퍼진 호소는 여론에 “여성의 일관된 증언만으로 사법부는 성범죄자로 실형을 받는다”는 경각심과 분노를 일으켰다.

법영상분석연구소는 사건 CCTV 영상을 보고 ‘우발적인 신체접촉의 가능성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스치는 1.333초’라 분석까지 할 정도였다. 이와 함께 사법부를 비판하고 성범죄 무고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등 관련 단체들도 결성됐다.

관련 집회가 일어난 이래 올해동안 광주 데이트 폭력 강압수사 사건, 곡성 성폭행 무고 사건 등 성범죄 무고 이슈는 끊이지 않고 터졌다. 반면 관련 이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곰탕집 성추행 논란에 대한 시민단체·언론의 주목은 이날 아침 추위만큼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오세라비 작가의 회고처럼 이날 법정 안팎에는 방송사 비디오 카메라는 물론, 억울함에 대한 호소까지 ‘2차 가해’라며 민감하게 반발하는 여성단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사건 대법원 판결 때 법정 내외를 메웠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날 판결이 있던 1호 법정은 빈 좌석이 눈에 띌 만큼 듬성듬성했다.

오전 10시 25분께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사건번호가 읊어지고, 단 5초도 안돼 판사는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 주문을 읊었다. 당사자를 비롯해 곰탕집 성추행 논란을 시작으로 성범죄 무고 처벌 및 형법 핵심 3원칙(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수호를 위해 싸워온 이들에게는 너무나 허탈한 순간이었다. 법정의 한산함이 마치 이번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지난해 9월 곰탕집 성추행 논란이 일어난 이래, 해당 사건 및 관련 성범죄 무고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오세라비 작가, 시민단체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성해연(성갈등연구회)는 12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사법부의 형법 핵심원칙(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수호를 주장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지난해 9월 곰탕집 성추행 논란이 일어난 이래, 해당 사건 및 관련 성범죄 무고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오세라비 작가, 시민단체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성해연(성갈등연구회)는 12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사법부의 형법 핵심원칙(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수호를 주장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이날 본지 기자는 대법원 판결을 보고나온 문성호 당당위 대표와 오세라비 작가, 전영 성해연(성갈등연구회, 구 페미니스트의 폭력을 기록하는 사람들) 대표 등 6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세라비 작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제는 남성들에게 무관용한 시대라 본다. 여성이 일관되게 주장하면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는 세상”이라며 “과연 우리 시대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여성의 무조건적 주장에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 할 것이 매우 우려된다. 뭐든지 엄벌에 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무시무시한 시대”라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것이 판례로 적용될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이달 25일에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까지 시행되는 등 올해는 최악의 한 해다. 한국 남성들에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것 역시 성인지·젠더 감수성 판결의 연장이다. 앞으로는 누구나 가해자로 지목될 때 100% 증거가 있지 않는 한, 판례를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 말했다.

전 대표는 “‘너는 여자인데 왜 이런 사건에 관심을 많이 가지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여성을 위해 이 사건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폭법 시행 및 이번 판례 등이 쌓이고 쌓인다면, 오히려 성별에 대한 갈등을 키우고 여성을 불리하게 만들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 방청을 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사법부의 판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주된 중점으로는 형법의 핵심 3원칙 훼손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판결에 분노하며 배심원제, 성범죄 무고죄 강화 등 대안을 모색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당당위·성해연은 사법부의 원칙 수호만이 중심이자 해결책이란 점을 강조했다.

전강민 성해연 회원은 “사법부가 선대부터 쌓아온 증거재판주의,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이 어느 순간부터 인민재판처럼 비슷하게 쓰이고 있다”며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당시 여성단체는 ‘동일수사’를 하라며 적반하장 격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심원제 도입 등 대안은 정부·사법부 및 여성단체의 입김이 들어갈 것”이라 지적했다.

문성호 당당위 대표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세대가 곰탕집 성추행 논란 등 관련 사건에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지금의 20·30 청년세대가 공정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이에 대해 사법부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라 비판했다. 사진 / 유튜브
문성호 당당위 대표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세대가 곰탕집 성추행 논란 등 관련 사건에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지금의 20·30 청년세대가 공정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이에 대해 사법부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라 비판했다. 사진 / 유튜브

문 대표는 “청년세대가 곰탕집 성추행 논란 등 관련 사건에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지금의 20·30 청년세대가 공정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곰탕집 사건을 시작으로 당당위를 결성해 1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억울한 사건들을 다뤘다. 문제는 이에 대해 사법부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다. 형량과 상관없이 성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은 사회적인 살인이자 사법살인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억울한 판결들은 무궁무진하게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것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분노와 시민들의 관심은 식지 않을 것”이라며 “싸워 나가야 하는 상대가 사법부라는 강력한 국가기관이다. 하지만 결국은 이뤄야 할 일이기에 당당위가 쓰러지면 제2, 제3의 당당위가 생길 것이고, 결국에는 저희가 바라는 바도 이뤄 질 것”이라 내다봤다.

당당위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관련 집회 추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연말에 총선 등 이슈가 많으나, 최적의 방법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며 “관련 성명문도 조만간 밝힐 예정”이라 덧붙였다.

곰탕집 성추행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당당위는 진보 언론으로부터 일베·여성혐오 집회라며 일본 극우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비교당하기도 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보도한 상당수 매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를 ‘성대결’ 양상 구도로 표현하고 있다.

성범죄 무고에 대한 논란이 한국사회를 휩쓸 때 카메라와 여성단체는 오직 정치인의 스캔들에만 주목했다. 이들은 그의 추락에 환호했으며, 해당 스캔들을 폭로한 당사자는 최근 모 시민단체로부터 의인상까지 수여받기도 했다. 반면 12일 최고 사법기관의 유죄 결정에 대해 이들은 침묵하고 있다. 오직 온라인 여론만이 메아리 치고 있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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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2019-12-13 01:09:24
응원합니다

2019-12-12 17: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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