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죽겠다'는 말, 이제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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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죽겠다'는 말, 이제 쓰지 마세요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3.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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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사진=Pixabay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죽겠다'. 영어에서 “Oops, seems to die~!” 라고 했다면 진짜 목숨이 끝나가는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구, 죽겠다!’라는 말을 정말이지 입에 매달고 다닙니다. 언제이건, 어디서건, 누구 앞이건...가리지 않고 외쳐댑니다. '배고파 죽겠다', '보고싶어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좋아 죽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죽는다’라는 말처럼 고통스럽고 슬픈 말도 없습니다. 죽음이 뭔가요? 모든 걸 잃는 마지막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태연스럽게 이 말을 쓰는데, 이 이상한 말투를 일상적으로 대화 속에 마구 쓰는 우리 스스로만 못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죽는다는 정확한 뜻이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예외적으로 불 따위가 타거나 비치지 아니한 상태에 있을 때도 쓰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멋있는 것을 두고 쓰는 ‘죽인다’라는 표현어는 아예 사전에도 없는 희한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죠. 

몇 해 전이더라. 당시 30대 초반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 큰 상도 받으며 앞날이 촉망되는 작가가 있었죠. 그런데 끝내 못 넘은 벽 가난 때문에 여러 날을 굶다가 방세도 밀린 셋방 현관문에 이런 쪽지를 붙였었습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파 죽겠어요.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우리가 아픈 기억으로 알고 있듯 이 가난한 여성작가는 끝내 배가 고파 죽고 말았잖습니까. 죽겠다는 말은 이런 때나 써야지 ‘좋아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따위의 말은 어법이나 용례가 모두 틀린 것입니다. 당연히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입니다. 

어느 시화전에 갔다가 봤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죽겠다고 하는 말 너무 흔하다/
배고파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아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침통하고 암울한 희망 없는 세상을 만든다/
... 말이 씨가 된다니, 비록 하찮고 허접스런 때이라도
희망의 말을 속삭이자 
배불러 죽겠다는 인간, 굶어 죽는 사람.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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