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표류하는 4대강 재자연화, 전주천에서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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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표류하는 4대강 재자연화, 전주천에서 배우라
  •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 승인 2020.03.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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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강물이 가득한 이곳은 녹조라떼가 창궐한 낙동강 달성보. 4대강 보가 준공한 2012년 이래로 7년간 연속해서 녹조의 강으로 변한 낙동강. 사진=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녹색강물이 가득한 이곳은 녹조라떼가 창궐한 낙동강 달성보. 4대강 보가 준공한 2012년 이래로 7년간 연속해서 녹조의 강으로 변한 낙동강. 사진=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시사주간=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도심하천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주천에는 천연기념물 수달이 가끔 시민들과 눈도 맞춘다. 멸종위기종 삵도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너구리와 고라니는 터줏대감이다. 강의 모래톱과 자갈밭에 알을 낳고 사는 지구상에 1만~2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귀하디귀한 흰목물떼새도 쉽게 볼 수 있다. 물고기만 30여 종이 산다.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이다. 

전주천의 놀라운 복원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반복적으로 형성된 여울과 소다. 여울은 하천생태계의 활력 공간이다. 물길이 좁아지고 수심이 얕아져서 빠르게 흐르면서 부서지는 물방울로 인해 용존산소량이 높다. 바닥까지 햇볕이 닿아 자갈에 붙어사는 부착조류들이 잘 자라게 한다. 돌 하나를 들어보면 ‘강도래’와 ‘날도래’, ‘삿갓벌레’ 같은 수서곤충이 지천이다. 이들을 주식으로 하는 ‘쉬리’와 ‘돌고기’ ‘참종개’같이 빠르게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반면, 물고기의 피난처이기도 한 소(웅덩이)는 상대적으로 물이 깊고 흐름도 느리다 보니 바닥은 주로 부유물이 가라앉은 펄과 가는 모래들로 이뤄져 있다. ‘납자루’, ‘붕어’나 ‘모래무지’ 같이 고여 있는 곳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주로 산다.

여울과 소가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호안에 갯버들이 심어진 전주천은 자정 작용을 통한 수질 개선과 다양한 서식환경이 마련됐다. 여울각시라 불리는 쉬리, 민물조개와 납자루, 상류로 거슬러와 산란하는 잉어들까지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이 같은 기적의 시작은 콘크리트보를 걷어내는 일이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전주천과 지천인 삼천에서만 모두 3개의 보를 고무보나 여울형으로 고치고 2개는 깨끗하게 털어냈다. 5년 전부터는 국가하천 구간의 5개 보를 철거 또는 개선해서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전주천을 완벽하게 자연하천과 가깝게 복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덕진보 철거 이후 만들어진 여울과 하중도. 사진=환경운동연합
덕진보 철거 이후 만들어진 여울과 하중도. 사진=환경운동연합

전주천이 보를 헐고 자연하천으로 되살아나던 시기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을 들여 4대강에 16개의 대규모 보를 설치하고 수심 6m를 유지하기 위해 준설로 자갈과 모래를 퍼냈다. 여울과 소, 수변 식생이 사라진 4대강은 녹조로 가득 찼고,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물고기 떼죽음이 빈번했다. 수돗물도 위험해졌다. 

낙동강에 물을 가득 찼는데도 식수 전용댐을 따로 만들겠다며 지리산댐 계획도 다시 살아났다. 불도저로 밀어 공원을 만든 수변 공간은 먼지만 풀풀 날리는 황무지로 변했다. 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조사도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환경영향평가도 아주 형식적으로 넘겼다. 담합 비리계약과 부패 토목공사로 국민의 혈세 22조원은 재벌기업의 배만 불렸다. 보가 가뭄, 홍수, 오염을 줄여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4대강 보를 헐고 다시 자연스러운 강으로 되돌리자는 것은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16개 보 수문을 상시 개방해 망가진 강의 자연성 회복을 확인하고, 2018년까지 보 처리방안을 확정해 2019년에는 4대강 재자연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따라 환경부는 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4대강 16개 보 중 11개 보를 개방하여 관측(모니터링)한 종합 분석한 결과는 환경단체가 기대한 대로였다. 생태계 회복은 놀라웠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졌던 모래톱과 여울이 다시 생겨나니 떠났던 새들과 수달, 삵, 맹꽁이 등 야생생물들이 돌아왔다. 금강에선 10년간 보이지 않던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민물고기인 흰수마자가 다시 발견되었다. 보 아래 유역에 물웅덩이, 하중도와 모래톱, 수풀 등 다양한 서식지가 다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도 지난 11월, 보 개방 폭이 클수록 녹조 발생이 적다는 발표를 통해 보 확대 개방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보가 건설된 구간의 여름철(6~9월) 녹조 발생 상황 분석결과 금강과 영산강의 평균 녹조 발생은 보 개방 이전인 2013~2017년에 비해 각각 95%, 97% 감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단호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재자연화’라는 방침은 흐지부지해졌다. 4대강 16개 보 처리방안 마련을 위한 정부 조직인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 은 2018년 10월을 넘겨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우선 금강과 영산강 5개 보의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해체, 다리로 이용되는 금강 공주보의 부분 해체,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의 추가 모니터링 안이 제시됐다. 

그런데 지난 8월, 물관리기본법에 따라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처리 방안에 대한 매듭을 못 짓고 있다. 한강과 낙동강은 진척도 없다. 

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권에 유불리 따지지 않고 ‘합리적 결론’ 나면 총선 전이라도 발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금강유역위원회와 영산강섬진강유역위원회에 의견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영섬유역위원회는 정책분과 회의와 민간위원 회의를 통해 각자 의견을 내고 토론했다.

그런데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4월 총선을 전후해 매듭을 지을 것으로 예상했던 4대강 보 처리 결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겉으로는 농업용수 사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부 농민을 들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보 철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보수정치인들을 의식해서 4대강 보 철거가 총선에서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국가물관리위원회에 환경부가 어깃장을 놓은 셈이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재벌, 토건세력과 밀접한 이해관계 속에서 추진한 정치적 사업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환경 적폐인 4대강 보를 철거하고 재자연화해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환경부의 역사적 소명이다. 대통령도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해 환경부에 큰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정치적인 시기마다 4대강 재자연화에 대한 판단을 미뤄왔다. 조 장관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집권한 지 3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서두른 적이 없다. 유역위원회 의견 수렴까지 진행된 금강과 영산강의 보 개방 관련 결론을 못 내리는데, 11개 보로 막혀있는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은 언제 열겠다는 것인가? 

정치적 판단은 거침없이, 보처리 방안은 미적대는 장관은 촛불 정부의 장관 자격이 없다. 결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보 철거는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진다. 4대강 보가 만들어진 후 지하수를 이용한 수막 재배, 미나리 농가 등이 늘어났고 공장용수 취수 높이 등 변화된 환경에 맞춰 온 이해당사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한시바삐 수문을 전면개방해서 우리 강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 보를 철거하고 여울과 소를 조성해 수질과 생태계를 복원한 전주천에서 배우라. SW

leekfe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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