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주고 약 주는’ 김정은 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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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병주고 약 주는’ 김정은 친서
  • 시사주간
  • 승인 2020.03.0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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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상처를 줬다면 사과가 먼저
진실 담겼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 없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공동선언문 발표를 마친 후 박수 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공동선언문 발표를 마친 후 박수 치고 있다. 사진=청와대

‘병주고 약 준다’다는 말이 있다. 요 며칠사이 북한이 한 요상한 행위에 맞춤한 말이다.

그 전날 “겁먹은 개”, “저능한 청와대”라며 우리 정부를 대놓고 조롱했던 김여정 담화가 마르기도 전에 남녘 동포를 위로한답시고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보냈다.

청와대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한국 국민을 위로하고,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긴 친서를 받은 문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담은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수차례 북한에게 놀림을 당해 주름살이 늘어났던 대통령의 입장에서 오랜만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일각에서는 벌써 지난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1년 넘게 대화를 중단했던 남북이 새로운 돌파구 찾기에 나선 것이라고 평했다.

한 사람은 으르고 다른 한 사람은 달래는 이런 수법은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사람이 아무리 낯짝이 두껍다 하더라도 바로 전 날 갖은 모욕을 주고 나서 다음날 헤헤 거리며 위로한다고 나서는 사람은 잘 없다. 아무래도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면 먼저 사과부터 하는게 도리다. 뺨 때리고 사탕 주는 식의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두둘겨 맞고도 가만 있으면 점차 얕보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이번 일은 참기만 하는 우리 정부가 자초한 면이 없지도 않다. 이런 태도는 국민적 자긍심과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아무튼 편지 한 장 받았다고 봄이 오지는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위장평화 수법이 어떤 것인가를 수없이 보아 왔다. 또 우리의 선의가 어떻게 악용되는지도 잘 봐 왔다. 불리하면 대화를 요구하거나 숨고 유리하면 뒤통수를 치는 상투적 수법에도 익숙해졌다. 회담 무용론도 불거졌다.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무슨 의도로 슬그머니 편지를 보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의 사태를 걱정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작은 성의라도 보태는 마음이라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북한이 진실된 자세로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한반도의 역량을 장대하게 커질 것이며 제대로 된 주권국가로 발돋음하는데 거침이 없어질 것이다. 이제 그만 정권 유지의 소소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반도 융성을 위한 큰 발자국을 딛기 바란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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