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미지 쇄신 위한 '사명 변경'이 왜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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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미지 쇄신 위한 '사명 변경'이 왜 나쁜가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03.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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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이 지난해 말 계열사 남양F&B의 사명을 '건강한사람들로' 변경했다. 이와 관련 일부 네티즌들은 불매운동을 의식한 '남양' 브랜드 지우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진=남양유업
남양유업이 지난해 말 계열사 남양F&B의 사명을 '건강한사람들로' 변경했다. 이와 관련 일부 네티즌들은 불매운동을 의식한 '남양' 브랜드 지우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진=남양유업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올해 창립 56주년을 맞은 남양유업이 갑작스런 '사명 변경'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복수의 매체는 남양유업 자회사 남양에프앤비(F&B)가 지난해 11월22일 사명을 '건강한사람들'로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남양유업이 계열사명을 교체하고 '갑질' 논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는 게 기사 내용의 주요 골자다. 

온라인 상에서 촉발된 남양유업의 '브랜드' 지우기 '꼼수' 지적에 일부 매체가 사명변경 사실을 확인해 보도하면서 남양유업의 과거 '갑질' 논란이 다시 회자되는 모양새다.  

남양F&B는 음료 생산 및 ODM(제조자 개발생산) 업체다. 남양유업이 본격적으로 커피시장에 진출한 이후 음료 영업망 확충을 위해 지난 2011년 5월 설립됐지만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사업도 겸하고 있다. 유통업체의 의뢰에 따라 유통업체의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는 제품을 생산한다는 의미다. 

실제 남양F&B를 통해 생산된 대표적인 제품은 코카콜라의 환타, 웅진식품 빅토리아 탄산수, 동아오츠카 나랑드 사이다와 GS2리테일을 비롯한 유통채널 PB 제품도 다수 존재한다. 

이와 관련 일부 소비자들이 OEM 방식으로 제작된 상품에 대해 남양F&B가 의도적으로 회사명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표시한 데 이어 '건강한사람들'로 사명을 바꾸는 등 '남양'브랜드 지우기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는 것. 

팩트는 유통업체의 주문을 받아 제조한 제품에는 당연히 '남양' 브랜드명이 들어갈 수 없다. 코카콜라의 주문에 따라 단순 제조만 한 환타 제품에 '남양 환타'라는 브랜드명을 붙일 수 없다고 이해하면 쉽다. 대신 제품 하단이나 후면 '제조원'에 남양F&B(건강한사람들) 사명이 명시돼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남양 측에서 단순 제작한 제품도 불매하기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OEM 상품에 대해서는 남양 측이 일부러 브랜드명을 전면에 노출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뒤늦은 사명 변경 보도와 관련 남양유업 관계자는 "남양F&B라는 사명은 음료제조 전문 이미지가 강했다. 앞으로 건강한사람들로 가정간편식 등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업 조정 측면에서 사명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주에 밀어내기를 강요하며 욕설을 하는 등 '갑질 파문' 이후 지금까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 

남양유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억1735만원으로 전년 동기 85억8741만원  대비 95.1% 감소했고, '갑질 파문' 이전인 2012년 남양유업의 영업이익(637억2918만원)과 비교하면 약 633억원가량 쪼그라든 수치다. 

소비자의 외면과 실적부진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남양유업은 올해 창립 56주년을 맞아 상생을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더한 것. 

남양유업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이전부터 아산시 우한 교민 격리시설에 음료와 두유, 커피 등의 후원 물품을 보냈고, 확진자 급증 이후에는 대구 지역 의료진과 자원봉사단을 위한 생수 2만개를 지원했다. 또 대구, 경북, 경남, 부산 지역 대리점주와 소속 직원들에게 마스크와 세정제를 보내며 격러했고, 본사 임직원들이 나서 긴급 헌혈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남양유업의 이번 상생 움직임만을 가지고 남양유업을 추켜세우며 칭찬할 의도는 없다. 7년이 지났음에도 지속되고 있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사명 변경은 인수합병, 글로벌화, 사업확장 등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져 왔고 겉으로 드러난 이유가 무엇이 됐든 그 속에는 '이미지 쇄신'이 분명 존재한다. 앞서 우리는 경영악화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창업주의 성추문 사건 등으로 생긴 부정적 이미지 쇄신을 위해 사병을 변경한 다수의 기업을 이미 목격한 바 있다.  

계열사 사명을 변경한 남양유업의 진짜 속내가 '갑질 파문'으로 인한 '남양' 흔적을 지우고 불매운동을 피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그게 왜 나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양=갑질'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보다 회초리를 맞더라도 새로운 사명으로 돌아선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그 전제에 남양유업의 진심어린 반성과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건강한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남양유업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비난은 그때 두 배, 세 배로 해도 충분하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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