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윤석열 총장과 토머스 베켓의 위치는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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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윤석열 총장과 토머스 베켓의 위치는 다른가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4.0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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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베리 대주교, 헨리 2세와 막역지우였으나 대립
윤총장, 임무 다하면 되지만 녹록치 않은 세태
주장환 논설위원
주장환 논설위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영국 헨리 2세 재임 시절 켄터베리 대주교를 했던 토머스 베켓의 삶은 극적요소를 모두 갖췄다.

1161년 캔터베리 대주교 시어볼드가 죽자 헨리는 그 자리를 1년간이나 비워두면서 자신의 친한 친구인 베켓을 대주교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베켓은 이를 거절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금은 폐하가 신을 총애하나 신이 대주교가 된다면 반드시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는 대주교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권한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가 개인적으로 우정을 나눌 때야 온갖 시시껄렁한 일을 해도 그냥 지나치게 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공적인 업무를 맡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그는 사제로서 의무와 신하로서 의무가 상충할 때는 사제로서 의무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거지에게 건네줄 망토를 가지고 서로 토닥거리거나 영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영국은 당시 세속적 왕의 권력과 종교적 권력으로 평형을 이루며 유지되던 나라다. 그러나 베켓은 자신이 대주교로 임명되면 공과사를 구별해야 하고 그러자면 왕의 폭정을 제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을 잘 알기에 거절했다. 그러나 헨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베켓은 결국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역시 세상은 변해갔다. 아니 사람이 변해가는 것이기도 하다. 예상대로 교회의 독립을 주장하는 그와 절대왕권을 강력히 추진하던 왕은 심한 대립을 일으키고 마침내 베켓이 프랑스로 도망치기 까지 했다. 6년간의 망명 후, 민중의 요구에 못이겨 다시 대주교좌로 돌아왔으나 왕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베켓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좌우명이었다. 한때 대통령과 여당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장모의 사문서 위조 문제와 관련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과거 보수 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으나 진보 측에서 고의적인 흠집 내기라며 적극 감쌌다. 그런데 지금 처지가 바뀌자 말을 바꾸고 있다. 윤 총장은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정당한 법집행을 하는 사람이라는게 세간의 평이다. 남을 향해 독설을 할 때 자신의 입에 독을 먼저 품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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