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發] '공포정치' 부활한 필리핀…韓 교민 '빌리지'는 "오직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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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發] '공포정치' 부활한 필리핀…韓 교민 '빌리지'는 "오직 평화"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04.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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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봉쇄령 위반자 '사살' 허용…60대 남성 사망 
홈 격리 상태 외부 출입 자제, 바깥 상황 정보 한계 
교민들 SNS 통해 정보 공유, 현지 뉴스 의존 생활 
한국 교민 거주 '빌리지'…"새 지저귀는 소리만"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공포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 위반자에 대한 '사살'을 허락한 지 삼일 만에 실제 자국민이 사살된 것.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루손섬 봉쇄 기한이 오는 30일로 연장된 가운데 두테르테 대통령의 공포정치가 한국 교민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교민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체크포인트(검문소)에서 군인들이 현지인 패스(출입증)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체크포인트(검문소)에서 군인들이 현지인 패스(출입증)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2016년 '마약과의 전쟁' 당시 범죄자들을 즉결 처형해 악명을 떨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1일 TV연설에서 "경찰과 군 그리고 마을 공무원들에게 명령한다. 만약 그들이 폭력 사태를 일으켜 당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들을 사살하라"고 말했다. 

이는 메트로 마닐라 내 퀘존시 시민들이 정부에 먹을 것을 요구하며 EDSA(마닐라 메인 도로)로 진입, 경찰과 충돌이 일어난 직후 나온 말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들을 반정부 폭동을 주도한 좌파 그룹으로 규정하고 "좌파들은 필리핀들을 테스트하려 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을 체포하고 가두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군은 인명이 위험한 경우가 있으면 쏴서 죽여버려라"고 사살을 허용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스크 구입이 어려운 필리핀 현지인이 물통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스크 구입이 어려운 필리핀 현지인이 물통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또 "불평분자들때문에 음식과 돈을 나누는데 정치를 개입시키지 마라. "정부를 위협하려 하지 말고 정부에 도전하지 마라. 체포될 것이고 감옥에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포정치' 부활 조짐에 필리핀 국민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반감을 드러내자, 살바도르 파넬로 대통령 대변인은 "폭도들과 정부의 적들에게 무력으로 위협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법은 이것을 이용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치명적인 무력의 사용도 허가하고 있다"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더했다. 

파넬로 대변인은 "두테르테 대통령은 단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행동에도 정부는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라고 덧붙였고, 그 경고는 현실이 됐다. 

필리핀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필리핀 남부 아구산 델 노르테주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63세 남성을 향해 실탄을 발사해 현장에서 숨졌다.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한 지역 한국 교민 거주 빌리지 내 방역 차량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한 지역 한국 교민 거주 빌리지 내 방역 차량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사망한 남성은 술에 취한 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이를 지적한 경찰관에게 낫을 휘두르며 항의하다 즉각 사살됐다. 

이와 관련 메트로 마닐라 내 거주 중인 강모씨(45·여)는 "필리핀 현지인 사살 소식은 현지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TV연설 당시만 해도 설마 진짜 총을 쏠까 싶었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교민사회가 술렁인다거나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강 씨는 "사망한 남성은 루손섬이 아니라 민다나오섬 거주민이었고, 루손섬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각 가정이 사실상 자가격리 상태이기 때문에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때그때 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한 지역에서 빌리지를 드나들거나 마트 이용시 필요한 홈 쿼런티(가정 격리) 패스(출입증).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한 지역에서 빌리지를 드나들거나 마트 이용시 필요한 홈 쿼런티(가정 격리) 패스(출입증).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오후 7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바깥 출입이 어려워 교민들 간에 SNS 단톡방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페이스북 등의 현지 뉴스로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강 씨는 "허락된 시간 안에 쿼런티 패스(출입증)만 있으면 출입이 가능한데 현지인들의 경우 패스 발급을 못받는 경우도 있고, 마스크 구입도 어려워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살된 남성도 애초에 마스크 미착용이 문제였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퀘존 지역에서의 폭동도 현지인들이 정부에 음식을 요구하며 발생했다. 정부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있지만 빈부격차가 큰 나라에서 형편이 어려운 국민들은 코로나19 감염보다 당장의 생계 더 큰 문제인데 정부의 대책을 마냥 믿고 따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일부 한인회에서는 필리핀 현지인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을 준비 중이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식량 비축이 가능하지만 필리핀 극빈층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다른 교민 이모씨(45)는 "필리핀 내부에서도 지역별로 검역이나 단속에 온도차가 있다"면서 "메트로 마닐라는 비교적 안정을 찾았고 출입증만 소지하고 있으면 경찰이나 군인들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경찰 사살 사건이 발생한 민다나오 쪽은 워낙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메트로 마닐라 내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는 빌리지는 안정을 찾은 모양새다. 지난달 17일 가정 자가격리가 시행된 지 3주가 지난 상황에서 ▲오후 7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 통행 통제(지역별로 상이) ▲2인 이상 이동 금지 등의 불편함은 있지만 상황에 적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주로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는 빌리지. 빌리지 내에서도 3명 이상 함께 이동이 불가해 거리에 사람 없이 평온하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내 주로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는 빌리지. 빌리지 내에서도 3명 이상 함께 이동이 불가해 거리에 사람 없이 평온하다. 사진=필리핀 현지 독자 제공

강 씨는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 됐고, 남편은 직장 기숙사에 머물며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온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나가는 것 말고는 빌리지 내 생활이 전부지만 철저한 격리생활로 하루빨리 코로나19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한인회 등의 도움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고 어려움에 처한 교민들을 서로 도우면서 코로나19 극복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하루에 두 어번 빌리지 산책 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오히려 평화롭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루손섬 전체를 봉쇄한 필리핀 정부는 봉쇄 시한을 오는 30일까지로 연장했다. 당초 루손섬 봉쇄는 오는 13일 자정을 기해 해제될 예정이었다. 9일 오후 4시 기준 필리핀 확진자는 4076명, 누적 사망자는 203명이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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