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②] 죽음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서초1동 청년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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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②] 죽음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서초1동 청년 잔혹사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4.22 11: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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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청장 “안타깝게 생각”...관리감독 추궁엔 ‘침묵’
자살이 질병-개인 탓인가...우울증 알고도 내몰린 청년
CCTV 영상 안된다던 서초1동, 보관기간 ‘3주’ 말도 없어
‘그 때 그 사람들’의 전면부정...이유 묻자 “할 말 없다”
母 “동의 없이 부검”...경찰 “그런 적 없다. 기억 안나”
사진=현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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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지난해 12월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故 최준(21·남) 군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연이 여론에 처음으로 조명됐다. 그런데 그보다 5개월 전인 지난해 7월 4일, 서울 서초구의회 본회의에서 이 사건이 처음 드러나게 된다.

제288회 서초구의회 본회의 당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서초구의원은 조은희 서초구청장에 최 군과의 사연을 처음으로 질의했다. 구의회 회의록에 공식적으로 기재된 순간이자, 우울증 지병을 앓던 사회복무요원이 폭언·하대로 이름난 민원 업무 배치 때문에 실종 후 숨진 사건에 대해 관리·감독 책임을 추궁 받은 첫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소속기관의 장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할 뿐, 관리소홀 여부 질의에 대한 답은 없이 사건 개요만 설명했다. 2018년 12월 보훈처에서 최 군을 보훈보상대상자로 선정하며 “관리기관 내 신상관리 미흡과 ‘재발성 우울증’ 악화가 직접적 원인”이라 인정했음에도 말이다.

사진=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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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질환자의 자살...‘개인 탓’이라는 뉘앙스

그런데 조 구청장은 김 의원의 해당 질의에 대해 “민원인에게 꾸지람을 듣고 말없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답했다. 해당 답변 내용을 구청장에게 보고한 주체에 대해 서초구청은 지난 21일 “용산경찰서 사건 수사보고서와 사회복무요원 관리부서의 보고서를 받고 답한 것”이라 말했다.

그 ‘말없이’란 한마디 표현은 2016년 8월 31일 최 군에 대한 용산경찰서 수사보고서를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 또한 종합보고 부문에서 “변사자는 지난 5, 6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말없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조 구청장의 해당 발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검 결과 외부인의 타살 흔적도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 ‘말없이’란 표현만 따른다면 최 군의 변사는 최 군의 ‘계획적이고 자의적인’ 자살을 암시한다고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가 한강변 익사체로 발견된 것이 정말로 모두 개인의 온전한 선택일까.

우울증 질환자가 목숨을 끊는 과정을 전부 자기의지로, 치밀히 계획을 세울 만큼 이성적으로 행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자살은 ‘사회적 죽음’이란 표현이 더욱 가까운 세태다. 더욱이 최 군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울증 질환을 앓고 수년 간 약을 꾸준히 복용해왔다. 부검감정서에서도 그의 체내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신경안정제가 발견될 정도였다.

그런 상태의 최 군에게 센터는 폭언·막말로 악명 높은 민원 업무로 배치시켰다.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민원인에 의한 언어폭력 문제는 학을 뗄 정도로 유명하다. 경찰 보고서에서도 센터 공무원은 진술 당시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하고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표현했다. ‘계획적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 아닌, ‘통제되지 않은 모습을 목격할 정도’였단 것이다. 그 때 그가 우울증 약을 먹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있었을까.

사진=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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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TV 못 보여준다”던 서초1동...보여줄 ‘의지’는 있었나

그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기록은 CCTV 영상뿐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보고서에서 확보했다는 CCTV 영상은 센터 밖부터 서울교대 교차로까지였을 뿐, 폭언이 이뤄졌다는 센터 내부와 마지막 순간이었을 한남대교 위는 언급되지 않았다. 어머니 최 모 씨가 그나마 서초경찰서 형사로부터 ‘한남대교 전망대까지의 영상이 확보됐다’는 말을 들었으나, 정작 최 씨는 이를 보지 못했다. 사망장소 때문에 관할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모친 최 씨는 서초1동 주민센터에 2016년 6월 22일 최 군이 센터 밖으로 뛰쳐나가던 날의 내부 CCTV 영상을 보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러나 당시 센터 고위 공무원은 “조작할 직원이 없다”, “누가 보여달라 해서 보여주진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을 증명할 마지막 영상을 구하고자 물어본 모친이었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법적 자문은커녕 정보공개 청구라는 제도조차 모르고 살던 그이기도 했다. 현행법에 따른 절차를 요구한 건 당연한 입장이겠지만, 해당 공무원과의 대화 속에는 그가 모친에게 ‘정보공개 청구’라는 단어나 방법조차 알려준 대목 또한 없었다.

최 씨가 센터에 영상을 요구한 그 날은 최 군이 사망한지 단 2주도 안되던 날이었다. 그러나 서초구청은 지난 21일 당시 서초1동 센터 CCTV 영상의 보존기간은 겨우 3주라고 답했다. 최 씨는 아들이 찍힌 CCTV 영상이 언제 파기됐는지도 모른 채, 4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 “할 말 없다” 전면 부정...이유 묻자 회피하는 그들

그런 최 군에 대해 당시 센터에서 근무하던 공무원들은 지금 어떤 대답을 하고 있을까. 최 씨는 “아들이 민원인에게 폭언을 듣던 날, 어느 누구도 이를 막지 않고 외면했다. 아들이 뛰쳐나갈 때도 어느 누구도 아들을 붙잡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최소한 최 군의 질환을 알고도 민원대에 배치시키고, 최 씨의 CCTV 영상 요구에 대해 답한 센터의 해당 고위 공무원은 이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러나 그는 21일 기자가 통화로 접촉을 시도하자 “제가 그와 관련해서는 말씀드릴게 없다.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 계속 얘기할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황급히 통화를 마쳤다. 그는 현재 서초구의 다른 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다른 동료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히려 “기사를 보니 어떻게,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내용이 거의 다 안맞다”고 기자의 보도를 전면 부정했다. 반면 그가 부정한 기사 내용들에 대해 질의하자 그는 답을 일절 회피했다. “나 말고 사회복무요원 관리과에 물어보라”고만 다그칠 뿐이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최 군이 근무한 센터도, 센터에 위치하지도 않는 서초구청의 민방위 부서였다.

사진=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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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고려하지 않은 ‘뛰쳐나간 이유’...부검 동의 무시됐나

취재 과정에서 유가족에게 사건을 묻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괴로운 행동이다. 그런 어머니 최 씨에게 센터와 구청만큼 그를 분노케 한 곳은 다름 아닌 사건을 수사한 용산경찰서였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용산경찰서 경관도 2016년 8월 말 보고서에서 최 군이 ‘한남대교 위에서 한강물로 뛰어내렸다’고 기재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그가 민원인의 꾸지람으로 분을 참지 못하며 근무지를 이탈했고, 2개월 전 한차례 같은 전력이 있었다는’ 센터 직원의 진술만을 사인의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참작할 뿐이었다. 보고서가 봤다는 센터 CCTV는 최 군이 밖으로 나가는 서술만 있을 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최 군이 뛰쳐나간 ‘이유’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아들의 사망 당일, 소식을 들은 최 씨는 패닉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시신 부검 소식을 들었다. 최 씨는 ‘경찰은 사건 당일 저를 피의자 대하듯 조사하고, 유가족에 부검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참관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최 씨는 그날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눈물을 터뜨렸다.

“담당 경찰이 한강에서 찾은 시신은 무조건 부검한다고 하면서 사흘 뒤인 월요일 오전 9시에 부검을 할 것이라 말했어요. 시간 맞춰 국과수에 가니, 경찰은 전화로 ‘이미 부검이 다 끝나고 시신은 순천향병원으로 갔다’고 말하더라고요. 병원으로 아들을 옮겼다는 동의도 없었고. 모습도 못보고 아들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게 말이나 되나요.”

이를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으로 항의하자, 해당 경관은 권익위에 ‘그렇게 응대하지 않았다. 사체부검 시 유족을 참여시켜야한다는 어떠한 규정도 없는데다, 부검에 참석하겠다고 명확한 의사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민원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익위는 결국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종결시켰다.

4년이 지난 21일, 기자가 담당 경관에게 문의했을 때도 비슷한 처지였다. 그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 진상조사·책임회피 ‘묵묵부답’의 4년

지난해 본회의에서 답한 조 구청장의 말만 따른다면, 최 군의 죽음은 개인 질병에 따른 문제로 축소돼 센터와 구청 모두 책임 여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병무청으로부터 재검 끝에 4급을 받고, 근무지에 질환을 알렸고, 그것에 위험한 영향을 끼칠 직무로 배치돼도 말이다.

반면 해당 센터에서 근무한 다른 사복요원은 ‘최 군이 사망한 후 사복요원에게 맡기는 민원 업무를 곧바로 철거시켰다’고 증언했다. 어머니 최 씨가 2017년 6월 ‘서초구청-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사건 진상조사를 바라는 구청장 면담을 요청했을 때, 구청장은 “자식 둔 부모 입장으로 아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질병에 의한 사유로 수사 종결된 사고”라고만 짧게 답했다.

지난 21일 기자는 서초구청에 모친의 진상조사 요구 및 보훈처 순직 인정에도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관계자는 “최 군 사망 후 장례식 당시 청장이 바빠 관할 부서장과 서초1동장이 대신 조문했다. 어머님도 고맙고 이해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장례인력 지원을 요구해 인력 10명과 차량 지원을 해드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머님께서 계속해서 진상조사를 요구하셨으나 경찰 수사가 종결된 사안이고, 조사결과에도 그러한 내용들이 있다보니 수사결과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뜻에서 그렇게 응하지 않았다” “모레 재판 결과가 나올 것이나, 수사가 미흡하고 재조사 하라는 판결이 있을 경우에는 충분히 응해야한다는 입장”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최 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고 반박했다. “아들이 화장장에 들어갈 때 울며 관을 잡고 매달리다 기절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왔는지 기억할 수 있겠나”며 “인력을 요청한 적도 없다. 뭘 고맙고 이해했단건가. 자식이 그 앞에서 죽었는데 어느 부모가 그렇게 말하겠나”라고 반발했다.

현재 최 씨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4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민사재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최 씨는 보훈처도 인정한 과실을 서초구청과 근무처 서초1동 주민센터가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책임을 묻고 있다. 최 씨는 “아들과 같은 많은 젊은이들이 판결을 보고 문제의식을 함께 갖길 바란다”며 당일 재판에 대한 방청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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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4-22 20:56:59
너무하네. 저 나쁜놈들은 공감을 못하는 싸이코패스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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