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n번방 방지법’과 IT기업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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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n번방 방지법’과 IT기업 길들이기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5.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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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국회가 온라인 성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을 방지한다며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을 오는 20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반면 IT업계는 이에 대해 졸속법안, 무용론이라 반발하고 있다.

이번 n번방 방지법은 SNS를 비롯한 게임, 동영상 등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해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뿐만 아니라, 최대 사업 폐지까지 가능케 하고 있다.

반면 n번방과 같은 성범죄 방지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한다는 그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쓰여 있지 않다. 수사기관조차 암호화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사건이 발생했기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텔레그램 측의 수사 협조가 아닌 피의자들의 핸드폰 잠금해제와 금융기록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IT기업에게 온라인 성범죄를 ‘알아서’ 방지하라는 법은 기업으로서는 문제와 책임을 떠넘기는 처사 아니냐는 반발만 부르고 있다. ‘정부가 IT기업을 길들이려한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IT기업 길들이기 사례는 게임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잠하나, 세계보건기구(WHO)를 위시한 일부 의료계와 극우 개신교계의 게임중독 몰이에 게임 산업은 만년 동네북 신세다. 반면 게임은 한류 관련 국제수지 중 케이팝, 영화 등을 제치고 명실공이 수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 산업의 저력을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세계 게임 시장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판호제(출판심의번호, 게임 유통허가권)로 중국 게임·IT 기업을 비롯한 해외 게임 기업의 진출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오죽하면 ‘판호 규제 한파’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이 통제의 목적에 대해 중국 정부는 ‘청소년 유해물’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이 제재를 받는 상당수의 모든 이들은 검열과 제재를 통한 게임·IT기업 길들이기라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 아래 출판·표현의 자유 제한은 당연시 다뤄진다.

중국이 전제적 국가라는 악명만으로 이러한 조치를 설명할 순 없다. 전제적 국가도 그 시행에는 나름의 근거와 당위성을 붙이기 때문이다. 이를 비교해 볼 때, 이번 n번방 방지법도 그와 비슷한 맥락 아니냐는 불만이 여론으로 모여지는 형국이다. 방지법이 말한다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도, 정부 입맛과 눈치를 따라 ‘알아서 기어라’라는 식으로 흘러갈 위험도 있다.

정작 n번방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은 러시아 정부 등 국가기관의 사찰에 대해 반발하며 만들어진 암호화 메신저다. 이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이나 정부 모두 국내 IT기업과 달리,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에는 어찌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n번방 방지법에 적용받을 국내 IT사업자들은 n번방 방지법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으로 다가온 셈이다. 정작 박근혜 정부 시절, 검열·사찰 논란으로 텔레그램 환승 운동이 일어나던 것도 돌이켜 보면 모순적이기도 하다.

소아성범죄 영상 웹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는 자신의 죄목에 대해 1년 6개월이란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았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악명 때문에 손 씨는 한국이 아닌 미국 법무부의 강제송환 요구를 맞고 있다. 입법기관이라면 스스로를 미국의 이러한 조치와 비교하며 현행 성범죄자 처벌의 한계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겠다. 진짜 정의는 공정한 처벌로 세워진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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