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황제병사라는 ‘행운아’, 그리고 ‘어둠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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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황제병사라는 ‘행운아’, 그리고 ‘어둠의 자식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6.1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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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C.R
사진=C.C.R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캘리포니아 출신의 위대한 록밴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이 누군지는 모를지라도,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를 봤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노래가 있다. 바로 1969년 발매된 ‘Fortunate Son(행운아)’이다.

노래의 배경이자 상징인 베트남전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쟁 중 하나이자, 한국군도 파병된 전쟁이다. 그러나 게릴라전으로 인한 막대한 희생과 징병 반대 등 반전 여론 등으로 미군이 철군하자, 남베트남은 월맹에게 패망하는 등 미국의 군사적 명성이 실추되기도 한 전쟁이다.

당시의 미국은 2차 대전과 냉전의 연장으로 지금의 모병제와 달리 징병제를 실시했다. 이 때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이자 미국 대통령이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손자 데이비드 아이젠하워는 베트남 최전방이 아닌 미해군 예비군으로 복무했다.

이 사실을 한 C.C.R의 존 포거티는 데이비드가 대통령의 손자란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았다 보고, 이를 빗댄 노래를 지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남베트남 지지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됐으니, 반전 여론이 팽배하던 당시 대통령의 행보와 그 손자의 병역 실태를 미국 국민들은 노래를 통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다.

노래 가사는 이를 신랄한 비판한다. 상원의원의 아들, 백만장자-은수저집 아들, 장군의 아들 같은 ‘행운아’가 아니면 군대로 끌려가는 현실이다. 그 끌려가는 곳이 게릴라와 부비트랩이 판치는 베트남 정글 최전방인데다, 설사 죽지 않고 ‘운 좋게’ 돌아와도 남은 생을 PTSD로 괴로워해야하는 운명이다.

한국은 어떤가. 1953년 6·25 한국전쟁이 정전된 이래 67년 간 이어온 징병제는 병역불평등이란 폐단 또한 이어오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 절대 다수는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란 자조부터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란 분노까지 군의 후안무치한 부조리에 의해 지금도 ‘어둠의 자식들’이란 이름으로 구르고 있다.

반면 부모가 장군이면 ‘장군의 아들’로 보직특혜를 받거나 대기업 회장 또는 국회의원이면 ‘신의 아들’로 면제를 받는다. 이 때문에 국방의 의무라는 병역의 신성성은 그 빛과 형평성을 잃은 지 오래다. 권력의 입김과 최근 극단적 페미니즘의 군인비하 횡포에 의해 67년 된 청년층의 분노는 뿌리 깊은 자조로 바뀐 것도 오래다.

공관병을 노비처럼 대한 갑질 장군도 어쩌지 못하는 한국이다. 그렇기에 이번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제3여단의 행운아가 ‘황제병사’로 간부를 부렸다는 폭로도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병역이란 희생가치와 군의 위신은 “냉방병 때문에 1인실을 줬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까지 당당히 말하고도 이를 들어야 할 정도로 추락한 것 아닌가.

황제병사는 병역제 국가 속 행운아의 오랜 이름이다. 소위 ‘빽’이란 뒷배경과 입김만 있다면 수발부터 없는 편제도 짜 ‘꿀보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관성화-부패됐다는 것이 이번 공군 황제병사 폭로로 ‘또 다시’ 드러난 한국군의 실태다.

권력이 병역형평성을 언제든지 주무를 수 있다면 그 피해는 군 전체, 국가 안보 전체가 안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해를 입는 이들은 들과 야산에서, 추위와 더위 속에서 구르고 기어 다니는 이 땅의 청년들이겠다.

이들이 ‘어둠의 자식들’로 내몰릴 때 절대 다수의 청년은 언제든지 권력과 제도에 의해 이용당하는-힘없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추락한다. 언제까지 “난 행운아가 아니니까”라는 자조만 해야 할까.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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