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입어도 지원 못받는 ‘가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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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피해 입어도 지원 못받는 ‘가사노동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6.1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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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미가입, 소득 증명 어려움 등으로 재난지원금 못 받아
수입 감소로 생계 큰 위협, 인권침해 등 위험에 그대로 노출
‘가사 사용인 적용 제외’ 근로기준법에 67년간 묶여, 권리보장법 계속 폐기
16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제9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회견에 참여한 가사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문제들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노동자회
16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제9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회견에 참여한 가사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문제들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노동자회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가사노동자들의 수입이 40%대로 감소하고 대면접촉이라는 이유로 일거리가 줄어들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고용보험 미가입, 소득 증빙 등의 문제로 인해 실업급여 및 각종 지원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9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이었던 16일,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31일까지 128명의 가사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이후 가사노동자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2019년 월평균 수입은 107만400원으로 집계됐지만 올 2월 73만2000원(지난해 대비 68.4%)으로 떨어진 후 3월 64만2000원(60.0%), 4월 66만5000원(62.1%)으로 급격히 하락하며 수입이 지난해의 40%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본인 소득이 가계소득의 전부라고 대답한 이들이 25%, 본인 소득이 가계소득의 절반 이상이라고 대답한 이들이 57.8%로 80%가 넘는 가사노동자들이 코로나19 위기 후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소득이 감소한 이유(복수응답)로는 ‘고객이 오지 말라고 해서’가 54.7%, ‘신규 고객이 없어서’가 12.7%로 나왔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대개 4시간 단위로 일하는 가사노동의 특성상 소득감소분을 감안하면 약 40% 정도의 일거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14.7%의 가사노동자는 ‘내가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서 일을 하지 않음’이라고 대답해 소득감소 문제와 더불어 대면접촉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고 ‘가족돌봄으로 일을 줄이거나 일을 하지 않음’도 4.0%가 나와 코로나19 여파가 가사노동자의 일자리 감소 및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가사노동자 A씨는 “당분간 오지 말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고정적으로 일하던 모든 집에서 갑자기 중지를 해 일자리를 다 잃는 갑갑한 현실이 됐다.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며 관리사 활동으로 버는 돈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주 수입원으로 나의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 걱정이 태산이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막막하고 힘겹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감소한 소득을 채우는 방법으로는 응답자의 54.7%가 ‘지출을 줄여 생활을 유지한다’고 했고 대출(14.8%), 저축 해약(11.7%), 지인에게 빌림(7.0%)이 뒤를 이었다. 이에 따르면 가사노동자 5명 중 1명은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절반 이상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계에 심각한 곤란이 올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응답자도 17.2%가 나왔다. ▲동선 공개 요구(주말에 어디 다녀왔느냐, 교회 다니느냐 등) ▲사적 정보 요구(가족 중 신천지가 있느냐 등)가 대표적인 예이며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를 이용해 방문해달라는 요구 ,▲마스크, 장갑 착용, 손 소독 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 등이 인권침해 예시로 제시됐다. 물론 차나 위생장갑, 마스크 등을 고객이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소득 감소 및 대면접촉 거부 등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이들은 실업급여, 고용유지지원금, 특수고용노동자 재난지원금 등에서 모두 배제되어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고용보험 및 계약서가 없고, 소득 증빙이 어렵고, 임금을 현금으로 받는 경우도 많아 소득감소를 서류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지원금에세 배제된 채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감염병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사노동자 B씨는 "정부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및 프리랜서 등에게 재난지원금 50만원씩 3개월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어 사무실에 문의를 해보았는데 가사노동자들은 받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거나, 협회로 서비스요금이 입급되었다는 확인과 제 통장으로 서비스요금을 받았다는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저희는 서비스요금을 현금으로 받는 경우가 많아 소득증명이 더 어렵고, 특수고용지원금은 각 지자체마다 다르게 책정되어 지원하고 받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가사노동자들에게는 지원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또 가사노동자 C씨는 “일을 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어디 다녀오셨냐’하며 동선을 확인하는 질문을 받고 ‘마스크 절대 벗지 말아라’, ‘위생장갑 준비해서 오라’는 등 감염관련 주의를 듣기 일쑤다. 그런데 고객이 어디 다녀왔는지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우리는 과연 고객으로부터 안전한지가 의문이다. 우리의 건강권도 위협받고 있다. 해고를 당해도 실업급여도 못받고, 다쳐도 산재보상도 못받고,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 없는 가사노동자는 재난 상황에서 생계 위협에 더 내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6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제9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가사노동자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현행법상의 문제에 있다. ‘가사사용인 적용제외’라는 문구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고, 국회 문턱을 겨우 넘었던 '가사노동자권리보장법'은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면서 ▲가사노동자 권리보장법 제정 ▲가사노동자 생존대책 마련 ▲가사노동자 안전 대책 마련을 국회에 요구했다.

현재 가사노동자는 ‘가사 사용인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근로기준법 제11조 1항의 벽에 막혀 1953년 이후 67년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사노동자들이 스마트폰 앱으로 통제를 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추세인 만큼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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