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주노동자에게 '이직의 자유' 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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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주노동자에게 '이직의 자유' 줄 때가 됐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6.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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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진=이주노동자노동조합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농업, 제조업 등 열악한 업체에서 일을 합니다. 열악하지 않으면 외국인을 쓰지 못합니다. 대우를 잘 해주면 이분들이 사업장을 옮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못하게 하니까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계속 일해야하고 사업장도 '자기 거'라고 생각하니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겁니다. 사업장 변경만 허가해줘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가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을 금지해 직장 선택의 자유와 직장을 떠날 자유가 없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때 이 헌법소원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한 말이다. 1년마다 사업주와 고용계약을 갱신하도록 하고 최대 5년 이내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한 고용허가제지만 사업주의 승인이 없이는 이직을 하지 못하도록 한 내용 때문에 임금 체불, 폭언, 성폭행 등 피해를 당해도 직장을 나가지 못하게 만든 '족쇄'가 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주의 임금체불이나 폭언, 폭행 등은 사실로 판명되면 승인 없이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업장 변경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고용센터에 신고를 하면 '증거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의 문제를 파악하기보다는 '사업주에게 사과하라', '합의를 보라'는 식으로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노동자들이 신고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일일이 해명해야하는데 그게 어렵다. 녹음파일 등을 가져와도 '사장인지 어떻게 아느냐'라고 따지는 일도 있고 공무원마다 온도차가 심한 부분도 있다. 이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업장 변경은 힘들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최 변호사의 말이다.

고용허가제는 본래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이주노동자에게 취업비자를 내주는 제도다. 허가제가 없어진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짧은 기간동안 이직을 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비자를 받은 뒤 바로 사직을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에 사업체가 피해를 입게 되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업장은 외국인 노동자조차 고용을 하지 못해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고용부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해진 기간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부당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 변호사의 말처럼 고용센터나 고용부가 증거를 요구하거나 기계적 합의를 종용하는 식으로 이끌다보니 사업주는 임금을 체불해도 오히려 "돈을 주고 나가라", "나가면 바로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 등의 폭언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 문제를 지적한 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 "외국인근로자가 이직을 하려면 사업주의 동의나 승인이 있어야한다는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했다가 이주인권단체들로부터 '허위 사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용센터가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게도 '사업자 동의서'를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고 노동자의 문제가 아닌 사항에도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일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사업주 동의 없이도 이직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결국 고용노동부가 노동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얼마 뒤 이 해명자료를 슬그머니 삭제해 논란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 진보정당 등은 고용허가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행 허가제의 '이직 제한'만 풀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업체 자체가 이미 내국인들이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사업체이기에 이직을 해도 큰 차이가 없고 대우가 좋으면 굳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직을 생각할 이유가 없으며 사업주들도 부당한 대우를 하면 노동자들이 떠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쉽게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임금 체불 등의 부도덕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기에 처우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고용노동부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의 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의심이 전제가 됐다는 느낌이다. '비자만 받고 일 안하고 놀면 어쩌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민폐 끼치면 어쩌지?', '내국인 자리 뺏으면 어쩌지?' 가 고용허가제의 전제가 아닌가 싶다.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삐딱한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고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남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업주의 물건'이 아닌 '당당하게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동의'가 아닌 '자율'에 따른 이직, 사업자 변경을 이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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