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박원순의 마지막 길, 탄식과 허망함만 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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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박원순의 마지막 길, 탄식과 허망함만 비 내렸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7.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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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박원순 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13일 오전 서울 하늘은 내내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 어느 이름 모를 소설의 한 구절마냥 침울한 분위기가 빗방울로 맺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시청 광장에 마련된 빈소로 오는 조문객들도 어두운 낯으로 말없이 헌화하고 참배를 했다. 지난 10일 박 시장의 빈소 마련에 대해 극우 성향의 유튜버 및 시민들이 항의하며 음모론을 펼치던 소란 당시와 달리, 이날 조문은 비교적 침묵 속에서 진행됐다.

서울대병원 발인 이후 서울시청을 찾은 유가족 등 조문행렬은 오전 8시 30분께 시청으로 옮겨져 온라인 영결식을 진행했다. 생전 박 시장이 수년 간 일하던 시청을 마지막으로 들르는 자리이자, 서울에서의 마지막이기에 조문객들 모두 시청 앞 정문에서 운구행렬을 기다렸다. 50~60대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조문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영결식을 시청하곤 했다.

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박 시장에게 직접 헌화하고자 먼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한 남성은 보안의 이유로 청사 내부로 출입을 저지당하자 격하게 항의했다. 끝내 흐느끼던 그는 정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인에 대한 큰 절을 두 차례 했다.

청사 정문 앞에서 박 시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자 대전에서 올라온 60대 남성 장 모씨는 전날 저녁부터 배웅코자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그의 가슴팍엔 박 시장처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있었다. “추모곡 통기타 공연 보면서 오늘 새벽 아침까지 기다렸지.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수가 있어야지.”

오전 9시 40분께 박 시장의 유가족 등 운구행렬이 시청 정문 앞을 나왔다. 박 시장의 위패와 영정사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조문객들은 일제히 통곡하며 운구행렬을 따라나섰다. “시장님 잘가세요”, “시장님 천국 가세요” 등 명복을 비는 조문객들의 흐느낌과 오열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운구행렬이 의전차량에 다가서자 곡소리는 더욱 커졌다. 서울에서의 마지막을 말하듯, 조문객들 일부는 의전차량을 붙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떠나는 자와 마지막을 붙잡고자 하는 이들의 통곡과 주저앉음이 한데 뒤엉켜 한 때 행렬은 아수라장이 됐다. 굵어지는 빗발과 현장을 담으려는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까지 비집고 들어와져 혼란은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끝내 의전차량이 서울을 떠나자, 박 시장의 죽음에 분에 찬 추모객들 일부는 현장의 취재기자들과 정치권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성추행 고소를 그 따위로 보도하냐”는 고성과 저주의 말들이 취재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슬픔에 겨우던 조문객들 일부는 의전차량이 간 방향을 향해 연거푸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빈자리까지 울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던 조문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빗길을 벗어나 각자의 갈 길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목격되던 장면은 시청 외곽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며 빈소로 진입하지 못하던 한 우익 유튜버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서울시장이자 여권의 대권주자이던 박 시장은 생전 서울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만인을 위해 힘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살수 진압을 앞장서서 막으면서까지 시민을 위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였다.

그래서일까. 여비서 성추행으로 고발된 지 단 하루 만에 실종 후 숨진 박 시장의 마지막 길은 그의 생전 행보만큼 허망함과 탄식으로 가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허망함과 그의 선택이 남긴 의문의 무게만이 탄식과 의혹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비만 쓸쓸히 내리는 마지막 길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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