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변절자(變節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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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변절자(變節者)’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7.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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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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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봉은 광기다. 그것은 인류를 피아로 갈라놓았다. 극성스러운 작자들은 인간을 사상으로 구별해 제 편이 아니면 낙인찍는다. ‘주홍글씨’는 미학적 단어다. 그러나 그 속에 ‘양변(兩邊)을 여의지 못한’ 졸렬함과 비열함, ‘너와 나는 다르다’는 차별감 혹은 우월감이 존재한다.

‘변절자(變節者)’라는 말은 치명적이다. 사전에는 ‘절개나 주의, 주장 따위를 바꾸거나 저버린 사람’이라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해 놓았다. 그러나 그 말이 갖는 의미는 민족이라는 단어에서도 발견된다. ‘내 민족’ ‘내 땅’이라는 민족은 바로 내 편의 피요, 살이다.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에서 변절은 죽음을 뜻한다. 총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병신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사회성도 상실한다. 주위에서 그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단종에게 등을 돌리고 세조에게 붙은 신숙주가 그랬고 일본에 나라를 팔아 먹었다는 욕을 듣는 이완용이 그랬으며 최린을 포함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몇 사람, 그리고 이광수나 최남선도 그랬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겹쳐 민족주의라는 말에서도 표층으로 솟아난 지 오래다.

최근 변절자라는 말이 조선의 뒷골목이 아니라 서울의 한 복판,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도 나타났다. 말은 너무나 생생하고 강렬해서 사람들의 가슴을 후볐다. 뼈와 살은 내층으로 숨어들고 엉뚱한 논리로 둔갑해 갈등과 충돌의 씨앗을 만들었다. ‘반복’은 자꾸하다 보면 원래의 뜻을 갉아먹는다. 원래의 진의를 왜곡하게 되고 마침내 그것을 진실인 줄 알게 된다.

태영호 의원과 탈북민들을 옥죄고 있는 변절자라는 말은 현실을 왜곡하고 실제의 뜻을 비틀어 증오할 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의 공격적인 채널을 통해 여과 없이 전파되는 이 말은 왜곡된 채 일반화될 지도 모른다. 마치 ‘정의’라는 말이 ‘내 편의 정의’로 바뀌어 가듯이 말이다.

변절은 사람의 인식을 전제로 한다. 거기에는 ‘내 편’과 ‘네 편’이 있다. 그래서 변절은 모험적이다. 성공하면 영(榮)이고 실패하면 욕(辱)이 된다. 탈북이 변절이 되려면 남한이 북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태 의원과 탈북민들을 변절자라고 부르려면 그 사람이 북한 사람이거나 김정은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습 독재정치와 6.25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의 입을 찢어 죽이고(이승복 어린이사건), 도끼로 사람을 처 죽이며(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죄 없는 관광객을 아우렇지도 않게 쏘아 죽이는(박왕자 피격사건) 반인륜적 사건 등과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천안함 폭침, 아웅산 테러 등 수많은 대형사건, 고모부와 형을 무자비 하게 살해하고, 남한이 지어준 건물을 산산조각내는 그런 일들을 찬양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태 의원과 탈북민들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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