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찰스 디킨스 150주년, 그의 휴머니즘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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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찰스 디킨스 150주년, 그의 휴머니즘을 기리며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8.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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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2020년은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 사후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영국적인 것, 영국인의 특징을 디킨스만큼 생명력 있게 표현한 작가는 드물다. 디킨스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빅토리아 왕조 시대 속에서 나고 자랐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근엄하고 위선적인 도덕주의는 디킨스를 만나 영국인 특유의 이중적인 희극적 요소와 유머를 탄생시켰다.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 계층, 빈곤층, 특히 어린이를 동원한 노동은 영국 역사상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로 남아있다. 빅토리아 왕조의 고약한 위선은 노동계층에게 있어서는 지옥과도 같던 시절이었다. 디킨스의 소설은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했다. 디킨스의 소설 속 무대는 영국 역사에 있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시대인 동시에, 디킨스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이유와 배경이기도 하다.

디킨스는 필자가 어린 시절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만난 최고의 소설가다. 동화책, 만화, 영화, 또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로 얼마나 많이 읽고 보았던지. “영국은 참 좋겠다. 디킨슨이라는 재미난 소설가가 아이들 편에서 불한당과 악당, 사기꾼을 물리쳐 주니!” 부러움과 함께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 없을지 불만을 가질 정도였다.

필자의 아동기, 청소년기 시절은 지금과 달리 아이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동네는 가난한 가정이 대부분이었고, 많은 형제들이 조그만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며, 이해 못할 별의별 일들이 동네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디킨슨 소설에 나오는 학대받으며 고생하는 아이들이 자라나 자신들을 괴롭힌 어른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며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무용담은 서구 어린이들의 정서를 넘어 우리에게도 크나큰 동조의식과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켰다.

디킨스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대표적인 작품 『올리버 트위스트』와 디킨스의 소년시절 실제 경험을 소설화한 『데이빗 코퍼필드』를 읽으며 울고 웃고, 또 위로를 얻었다. 어른이 되서도 디킨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을 보면 마치 새로운 드라마를 접하는 듯하다. 언제든 다시 봐도 그때 그 시절의 감흥을 되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악하고 이기적인 귀족은 그렇다쳐도, 귀족에 빌붙어 거간꾼 노릇을 하며 갖은 비열한 수법으로 아이들을 착취하는 패거리들이 응징 당할 때의 후련함이란! 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불한당들은 눈에 띄게 턱이 길쭉한 외모에 누런 이빨을 보이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이들은 지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디선가 훔쳐 입은 듯 금박단추가 달린 조끼, 고급 회중시계 하나쯤은 지니며 아이들에게 보란 듯 과시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딘가 모를 약간의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이해 못할 친근함까지 준다.

빈곤층의 삶에 대한 디킨스의 묘사가 이토록 뛰어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 삶의 체험에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12살부터 구두약 공장에서 노동을 했다. 부친이 채무를 갚지 못해 감옥소에 들어갔기 때문이. 디킨슨의 소설에는 이처럼 자신이 어릴 적 겪은 소년 노동자의 애환과 경험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디킨스는 소년기를 벗어난 나이에 의사당 속기사로 취직했다. 그의 장대한 서사는 우연히 한 신문사의 풍자문 기고를 청탁받아 글을 쓴 것으로 시작됐다. 20대에 들어서자 디킨스의 작품은 단숨에 영국을 사로잡았다. 이어 전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을 거뒀고, 죽을 때 까지 크나큰 명성을 누렸다.

1830년대 디킨스의 소설을 연재한 잡지가 당시 영국에서만 4만부 이상을 발행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그의 작품이 연재되는 잡지가 우편물로 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렸고, 디킨스가 연설하는 현장에서는 그를 보기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디킨스의 활동 절정기에 탄생한 작품은 『위대한 유산』이다. 이 책은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스토리로 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생생한 소설 속 인물들은 오래된 영국적 스토리의 셰익스피어와 달리, 또 다른 통속극에 대중적인 서사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세계인을 독자로 끌어들인 디킨스를 향해 『디킨스 전기』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표현했다. "디킨스는 시각의 천재였다!“

정말이지 그렇다. 인물들의 시각적 묘사는 단숨에 독자를 끌어당긴다. 『위대한 유산』의 서두를 보자. 주인공 소년 핍이 살고 있는 습지대 가난한 동네의 묘사를 눈앞에 보여주듯 그려낸다. 이어 핍이 탈옥한 죄수 매그위치와 맞닥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매그위치가 핍을 보자마자, 거꾸로 들고 흔들며 먹을거리가 없나 위협하는 대목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듯 실감을 낸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공포감을 주는 악당들에 대한 디킨스의 묘사는 아이들에겐 실제로 만날 것처럼 툭 튀어나올 것 같다.

디킨스의 장편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 또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영국은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다스렸고, 프랑스 역시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다스렸다” 이 문장에서 독자들은 당시 영국 왕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주걱처럼 넓고 아래는 약간 뾰족한 턱의 인상을 단박에 잡아낼 수 있고, 프랑스 왕들 역시 넓고 두툼한 장방형의 턱 모양을 가진 루이 16세와 아름다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평가한대로 시각의 천재인 디킨슨은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뛰어난 묘사력으로 성격화 한 작가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의 후기 작품으로 전기 글 풍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느끼게 한다. 장편 『황폐한 집』도 마찬가지로 종전의 디킨스답지 않은 문체로 스케일이 큰 대작에 대한 열망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디킨스는 살아생전 샘솟듯 솟아나는 이야기와 더불어 대단한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늘 어린 시절의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잊지 않으려 했고, 소시민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들이 누리는 작은 행복들을 작품 속에 담았다. 이것이 영국 사회를 진보시킨 디킨스의 휴머니즘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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