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과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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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과 자존심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9.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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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자존심 상한다. 느닷없는 정부여당의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일괄지원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명분은 코로나19로 지친 전 국민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만13세 이상 4640만 명에게 통신비 2만원씩 지원하는 것으로 재원소요는 약 9000억 원대에 달한다.

애초 정부는 통신비 2만원 지원 대상으로 17세~34세와 50세 이상 지원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논란이 거세지자 전체 인구 약 90%에 해당하는 만 13세 이상 지원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통신비 2만 원이라는 액수도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돈이 아닌 통신사로 들어가는 돈이란 것이다.

현금을 지원한다면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사거나 한 끼 외식이라도 할 수 있다. 덩달아 죽을 쑤고 있는 상점들도 반짝 경기를 누릴 수 있다. 일인 당 2만 원은 적은 액수지만, 전체 국민들이 돈을 쓰면 9000억 원이 시중에 풀려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는 금액 규모다.

그런 통신비 지원금 2만원을 두고 정부와 여야는 밀고 당기는 논쟁을 벌여 국민들의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통신비 지원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없었지 않은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4차 추경안을 추석 전 국회 통과로 목표를 잡으면서, 통신비 지원금 방안도 함께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4차 추경안 규모는 약 7조8000억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은 정부의 통신비 2만원 지원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을 더 걱정한다. 4차 추경까지 포함하면 나랏빚은 850조원에 달한다. 1000조원대 돌파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는 몽땅 다음세대에 물려줄 빚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무엇보다 잘 안다. 이런 마당에 통신비 2만원을 국민의 손도 아닌 통신사에 지불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부여당의 바람대로 국민들에게 위로가 될까? 통신비 지원을 함에 있어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간과할 수 없겠다.

통신비 2만원 지원을 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은 국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어려운 가정에는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금액”이라 했으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통신비 지원은 다소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2만원이라는 액수를 두고 ‘위로’라거나, 어려운 가정에 대한 ‘의미 있는 금액’이라는 표현도 유쾌하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어언 9개월째다. 때 아닌 보릿고개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생활이 팍팍하다. 프리랜서 직업군은 수입이 끊기는 어려움이 7~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필자도 지난 3월 한 단체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았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다 이달 초 일정이 확정됐다. 그러다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차 연기되더니, 이제는 주최 단체로부터 연락조차 끊겼다.

어느새 여름은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데 거리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동네만 둘러봐도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조치 발령‘의 알림이 곳곳에 붙어있다. 상가에는 ’임시 휴업’ 알림이 붙어있는 가게들만 즐비하다. 영업 하는 가게 입구에는 어김없이 ‘마스크 미착용자 출입 금지“가 붙어있다. 공공도서관은 현재까지도 임시 휴관 공지가 걸려있다. 마스크를 쓴 주민들은 서로 눈길을 피하며 멀찍이 떨어져서 움직인다. 용무가 있어 거리로 나와도 발걸음은 멈칫거려지고 심리적 위축이 생긴다.

모두가 지치고 우울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에 대한 압박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스크를 챙기지 않으면 문밖을 나가지도 못한다.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가도 마스크를 써야하고, 공공시설이나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깜빡 잊으면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허둥지둥 죄를 지은 심정이 된다. 빵 한덩이를 사러가도, 밥 한 끼를 먹으러 가도 출입명부를 써야만 한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쓰느니, 안사고 말지 싶어 도로 발걸음을 돌릴 때도 있다.

어제는 유효기간이 임박한 쿠폰을 쓰고자 카페에 들렀다. 사람들로 넘쳐나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카운터만 열어두고 차단됐다. 복층의 대형 카페는 직원 한 명만 일하며 테이크아웃 주문만 받고 있었다. 불 꺼진 카페 내부 분위기는 어둡고 고요하고 음산하다. 점심으로 마트에서 간편식을 사 손에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풍경은 이제는 일상이 됐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대합실 ‘만남의 장소’ 의자들은 승객들이 앉지 못하도록 전부 테이프로 감겨졌거나, 아예 치워버린 곳도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벤치도 전부 테이프로 감겨졌거나, 인근 공원의 정자도 출입금지 테이프가 걸려있다. 동네 산보를 해도 앉을 의자 하나 없어 집으로 돌아온다. 단지 시설물은 주민이 내는 관리비로 운영되지만, 방역이란 이유로 이용 제한을 받고 있으니 뭔가 억울한 느낌마저 든다.

근래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말이 단계별 ‘사회적 거리두기’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시민들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사람 간 단절로 이어진다. 거리두기는 곧 대화의 부재다. 상점들의 영업제한도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해가 지기 무섭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는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예측 불가능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으스스한 소식이 사람들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 상점들과 공공도서관은 문을 닫고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는 것일까. 이러다 코로나 핑계가 만성화될까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전 국민 통신비 지원 2만 원은 이래저래 달갑지 않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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