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시험에 박원순 성추행 ‘피해 호소인’을 묻다
상태바
MBC, 기자시험에 박원순 성추행 ‘피해 호소인’을 묻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9.14 19:42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일 언론준비생 카페서 MBC 논술문제 공개
‘박원순 고소인, 피해 호소인이라 칭해야 하나’
“2차가해”·“사상검증” 논란에 MBC “논리 검증 목적”
MBC 노조 “‘靑가 결정한다’고 쓰면 합격감인가”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MBC 취재기자 입사시험 문제에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범죄 혐의로 고소한 당사자에 대해 ‘피해자’라 칭해야하는지, ‘피해 호소인’이라 칭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를 출제했기 때문이다.

14일 언론사 시험 준비생 인터넷 카페 및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MBC는 지난 13일 신입 취재기자 논술시험에서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를 피해자라고 칭해야 하는가, 피해 호소인이라 칭해야 하는가’라는 논제와 ‘제3의 호칭이 있다면 논리적 근거와 함께 제시해도 무방함’이라는 설명이 붙은 문제가 출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언론사 준비생 커뮤니티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회원은 “명확한 정파성을 띄고 만들어진 논쟁이다. 공영방송에서 정파적인 논제를 갖고 논리성을 논한다니 아찔하다”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가져와 논제로 써먹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명백한 2차가해”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7월 초 박 전 시장에 대한 성범죄 고소 사실이 드러난 직후, 박 전 시장은 극단적 선택 끝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언론은 성폭력방지법 및 성폭력범죄처벌법 등 관련법과 형사소송 절차에 근거해 고소인을 피해자라 보도했다.

반면 박 전 시장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은 ‘피해 호소인’이라며 법률상 존재하지는 명칭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성범죄 무고 피해 문제에도 미투 운동 등 극단적 페미니즘의 폐해를 지지하던 정부여당이 2차 가해적 용어 지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MBC는 현재 정부여당의 프레임을 답습해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벌였다는 비판과 함께, 기존 친여(親與)적 보도 성향을 따라 응시자들에게 ‘사상검증’을 가했다는 논란을 동시에 받고 있다.

사진=블라인드
사진=블라인드

이와 관련 박 전 시장 고소인의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14일 KBS 라디오 프로그램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MBC를 향해 “살아있는 피해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 사람을 뭐라 부를지 결정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며 “법이 고소 단계부터 피해자로 명명하고 보호규정 적용 등 절차를 받고 있는데, 이렇게 의도를 갖고 질문하고 논제를 던지는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복수의 매체를 통해 “응시생들이 시사현안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 맥락 읽기 능력을 보려함이었다”며 “이를 2차 가해 찬반 문제로 등치시키는 건 위험하다. 문제에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는 것은 2차가해라 명시했다. 사건의 맥락을 잡아내고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출제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MBC 노조는 14일 성명을 통해 “MBC의 보도 행태로 미뤄볼 때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을 뽑으려는지 대단히 우려된다. 7월 13, 15일 보도에서 MBC는 피해 호소인이란 말로 일관했다”며 여권의 청와대 회동 이후 피해자 용어 사용 및 이를 따른 보도를 겨냥해 “‘MBC가 결정하면 안되고, 청와대가 결정해야 한다’고 쓰면 합격시키려 하는가. 이는 MBC의 왜곡된 성의식이 발로한 것”이라 비판했다.

유명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비판에 가세했다. 진 전 교수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MBC판 사상검증 갑질을 한 것”이라며 “그것도 권력이라고 휘두르고 싶었나. 진영에 환장하면 이런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야권도 뛰어들었다.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 소속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응시자들을 정권의 호위무사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조차 피해호소인 용어 사용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경했음에도, MBC가 재차 꺼내든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진=다음
사진=다음

MBC는 현재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 언론사 중 하나이자 지상파 3사 중 하나인 MBC가 수개월 전부터 준비했을 입사시험 출제문제를 이 같이 준비했다는 사실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험문제 자체의 민감성과 기존 MBC 보도 행태를 감안할 때, 2차 가해와 사상검증 논란에 따른 파란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것이란 추론이 모여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위치에 놓인 응시생들로선 사상검증 논란에 따른 ‘양심의 자유’ 침해를 느꼈을 가능성도 높다. 날카로운 질문은 그 자체로 힘을 갖는데다, 시험에서 묻는 자와 답해야 하는 자는 역학적으로 불공정한 높낮이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 구조 속에서 논란의 주제에 답을 요구받는 응시생 입장으로선 시험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단순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읽긴 힘들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직업정신으로 ‘성역 없는 비판’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표하는 이상과 평소 밟아온 행보가 뒤섞일 때, 그 부조화가 가한다는 성역 없는 비판은 ‘금기 침해’이자 ‘사상검증’이란 폭력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여론의 질문에 MBC가 대답할 차례로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