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공무원 피격...살얼음판 치닫는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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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공무원 피격...살얼음판 치닫는 남북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9.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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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해수부 항해사, 소연평도 해상서 실종
실종자 A씨, 해상서 北에 총살, 시신훼손 당해
박왕자 피살 이어 민간인 총격 사망 2번째
숨진 다음날 文 연설 ‘종전선언’...비판 잇따라
사진=서해어업지도관리단
사진=서해어업지도관리단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총격을 당하고 시신까지 불타는 민간인 사살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6·25 전쟁 UN 종전선언이 무색해지는 등, 2018년 무르익던 남북 화해무드는 살얼음판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국방부는 지난 21일 낮 12시 51분께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이자 8급 공무원인 40대 A씨가 소연평도 남방 1.2마일(2km) 해상 지점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 단속정에 의해 해상에서 피격, 시신은 북한 측이 해상에서 불태웠다고 24일 밝혔다.

이어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하느이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

주요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당국은 지난 21일 실종된 A씨를 오후 1시 50분부터 해경과 해군, 해수부 선박 및 항공기를 동원해 실종 해역 수사를 개시했다. 이후 22일 오후 3시 30분께 북한군이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을 붙잡은 채 탈진한 A씨를 해상에서 발견했다.

당시 북한군은 방독면을 착용한 채 A씨를 확인하고 표류 경위를 따져 물었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던 북한군은 22일 오후 9시 40분께 A씨를 사살하고, 오후 10시 11분 우리 군 장비로 북한군이 A씨의 시신을 태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이 군 감시 장비를 통해 확인됐다.

24일 국방부 청사서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4일 국방부 청사서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 국민이 북한에 의해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피살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북한군의 방독면 착용 등 정황으로 미뤄 볼 때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한 조치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나, 한국 정부와의 송환 협의나 보고도 없이 비무장한 민간인, 공무원을 사살한 사태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지탄 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군과 정보 당국의 발표, 정부의 행보가 이번 사건으로 맹비판을 맞고 있다. 자녀 둘을 두는 40대 평범한 가장이자 공무원이 ‘자진 월북’을 시도하다 표류해 사망했다고 발표한데다,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 ‘6·25 전쟁 종전선언’ 내용이 담긴 발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정보 분석 결과 A씨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본인 신발을 유기한 점, 부유물을 이요한 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을 고려할 때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반면 유가족 측은 A씨의 신분이나 상태를 볼 때 자진 월북을 시도할 특이사항이 없다고 정부의 월북 판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A씨가 생전 무거운 빚을 지고 있었다는 동료 등 지인들의 증언이 기사화되고 있어, 사태는 미궁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사진=MBC
사진=MBC

논란은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까지 미쳤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새벽 1시 30분께 청와대에서 비대면 화상으로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 연설을 맡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 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 밝혔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지난 15일 녹화돼 18일 유엔에 전달됐다. 이 때문에 A씨 피격 사건을 22일 보고받은 청와대는 연설 전면 취소가 아닌 이상, 연설 내용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자국민이 사살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기조를 따라 종전선언 발언까지 담은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지적은 미국으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관련된 노력에서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단합된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대북 정책과 방향을 같이해야한다는 입장의 강조이자, 문 대통이 UN 연설에서 강조한 ‘종전선언’에 대한 반박으로 읽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A씨의 피격이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되는지 여부를 두고 군 당국의 입장이 번복되는 모습이다. 비무장 민간인을 총살하고 시신 훼손까지 하는 만행에도 ‘군사합의서 상 완충구역 내 사격 제한은 포병만 해당될 뿐, 소화기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9.19 군사합의 위반 여부는 면밀히 검토해야할 부분’이라는 등 군 당국의 해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성공하는 등 한반도 평화무드의 급물살을 일으켰단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 3월 동해 미사일 발사 도발, 5월 철원 제3사단 GP 총격, 6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7월 탈북민 강화도 월북 등 남북 평화무드는 급격한 냉각기류에 빠진 바 있다. 이번 민간인 피살 사건 재발로 향후 남북 관계는 냉각기류를 넘어 살얼음판으로 치달을 모양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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