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종사자, 대목은 고달픈 전쟁!.
상태바
택배종사자, 대목은 고달픈 전쟁!.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3.09.14 14:13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택배기사들에게 추석은 대목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추석 연휴 보름 전부터 늘어나는 물량에 허덕이는데도 저임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추석이 5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택배업계가 명절 특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에게 추석은 대목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추석 연휴 보름 전부터 늘어나는 물량에 허덕이는데도 저임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택배 물량이 폭증한 지난 10일 서울 양평동 물류센터. 몰려드는 주문에 대형 택배회사 배송기사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 이전부터 시작된다.

쌀쌀한 새벽바람이 불만큼 이른 시간이지만 작업장은 추석 선물 상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배달할 물품을 분리해 차에 싣는 택배 기사들의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졌다. 밖은 선선한 초가을 날씨지만 작업장 안은 기계의 열에너지와 달아오른 체온 등으로 후끈했다.

30분이 채 안 돼 이제는 먼지로 목이 칼칼하다. 혼탁해진 작업장 안은 레일이 움직이는 기계소리와 상자를 던지고 받는 둔탁한 소리, 무거운 택배상자를 들 때 터져 나오는 택배 기사들의 기합 소리 등 날카로운 파열음이 진동했다.

추석을 일주일 남긴 이날 명절 택배 물량이 최대치를 찍었다. 영등포 사업소에만 11t 트럭 17대가 도착했다. 평소보다 40~5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택배 경력 13년차의 손모(45) 기사는 "오늘이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제일 힘들 날 찾아왔다"며 동행 취재한 기자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러나 택배기사의 배려가 무안할 정도로 기사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하루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결핍된, 극한의 환경을 체험하는 사투와도 같았다.

남들은 체중 조절을 명목으로 간헐적 단식(1일1식)을 선택 한다지만 이들은 근무 특성상 단식을 강요받는다.

식사는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택배 경력 8년의 배모(32) 기사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데 무슨 밥까지 먹느냐"며 되레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이날은 밤늦게까지 업무가 이어지니 한 끼 먹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업무량을 고려하면 잘 차려진 밥상도 모자라지만 메뉴는 자장면이다. 오전 9시30분께 자장면을 배달시킨 이들은 밀려드는 선물 꾸러미에 도착한 지 20분은 지난 퉁퉁 불은 면발을 흡입하듯 먹기 시작한다.

10분의 휴식시간도 없이 짐을 날랐건만 자기구역 물건을 찾아 트럭에 옮겨 싣는 '하차' 작업을 하는 데만 4시간 이상이 걸렸다.

배송은 낮 12시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평소 200개 내외를 배달하는 배씨는 이날 300개에 가까운 290개를 할당받았다.

운전 중에도 쉴 틈은 없다. 택배기사는 계속 전화를 걸어 주소지는 맞는지, 고객이 집에 있는지 체크한다. 빠듯한 배송시간을 맞추려면 도착 전에 확인해 헛걸음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편한 운동화에 볼펜을 낄 수 있는 조끼와 운전하면서 전화할 수 있는 핸즈프리는 택배 기사의 필수품이다.

배달지는 대림동이다. 주택가가 운집하고 저층 건물이 많아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과 비탈길을 오르다보면 무릎과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 몸이 쑤신다. 택배기사는 종합병원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98㎏의 거구였던 배씨는 극한의 육체노동 탓에 처음 이 일을 시작하고 한 달 새 20㎏이 빠졌다.

서둘러도 점심 식사는 놓치기 일쑤다. 빵으로 간단히 때우거나 어지럼증을 해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과일 음료 등을 수시로 마시며 당분을 섭취한다.

배씨는 "밥을 제 때 못 먹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낮 동안 밥을 못 먹다가 저녁에 배달할 때 가정집에서 요리 냄새가 나면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날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후 4시가 넘자 비까지 쏟아졌다. 제법 세차게 몰아치는 비에도 배씨는 모자만 눌러 쓴 채 배달에 나섰다. 왜 우비를 입지 않느냐고 걱정하자 "땀에 젖든 비에 젖든 똑같다"고 퉁명스레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미 오전 시간 배 기사의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물품이 주택가 골목을 끝으로 오후 7시 모두 배달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미 해는 졌지만 거래처를 돌며 물건을 받는 집하, 일명 픽업 작업이 남았다. 개개인이 거래처를 뚫는 일종의 영업으로 선택사항이지만 배송보다 일도 더 편하고 수입도 좋아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이 기꺼이 한다.

오전 7시에 시작된 근무는 마무리 집하 작업까지 오후 10시가 다 돼서야 완전히 끝이 났다. 하루 15시간 근무,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다.

배씨는 대부분의 택배 배송기사와 같이 배달한 물량만큼 임금을 받는 지입기사다. 택배회사 CJ대한통운과 계약한 지입(물류)회사에 월 20여만원의 지입료를 내고 배달한 물량만큼 임금을 받는다.

건당 2500원의 택배비 중 기사에게 떨어지는 단가는 평균 750원. 하루 200건 이상을 하는 베테랑 택배기사는 월 300만~350만원을 수령하지만 대부분은 150건 정도에 머문다.

300만~350만원을 받는 다 해도 기름 값과 통신비, 보험비, 부가세, 종합소득세, 차 수리비, 차 할부금, 번호판 가격, 밥값 등을 모두 제하면 정작 손에 쥐는 돈은 150만~170만원에 불과하다. 보통 노동시간이 적게는 12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에 이르는데 말이다.

배씨는 "택배 산업이 커지고 물량이 늘면서 전체적인 소득이 늘긴 했지만 배송자가 가져가는 몫은 오히려 줄었다. 과열 경쟁으로 업체들이 저가영업에 열을 올려 10년 전보다 오히려 택배비가 1000원 떨어졌다"며 "열심히 일하는 만큼 버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는 "인터넷에 보면 택배기사 모집 광고들이 많다. 4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다 거짓"이라며 "처음엔 차량 할부금에 이자까지 50여만원이 더 나간다.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벌 수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현재 택배 배송기사는 개인사업자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다. 외견상 특정 회사에 소속돼 일하지만 회사와 고용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을 맺어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 신분에 4대 보험 혜택도 없다.

손씨는 "현재는 회사에서 물품을 받고 나면 이후의 책임은 모두 택배기사에 있다. 회사 측은 분실이나 사고 발생 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송장의 보관관리까지 기사들에게 전가한다"며 "업체에서 설정한 단가에 매여 밤낮 없이 일해도 넉넉한 임금을 못 받는 게 현실인데 모든 책임까지 떠안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SW

hcw@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