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서울·부산 시장 재보선과 민주당의 퇴행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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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서울·부산 시장 재보선과 민주당의 퇴행정치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11.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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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불어민주당
사진=더불어민주당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838억원. 내년에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비용이다. 이 와중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당헌을 개정했다. 다음해 4월 실시될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 후보를 내기 위한 포석이다. 온 국민이 알다시피 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성범죄 혐의로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명은 시장 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이 당시의 민주당 당헌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그러자 당 지도부가 고안한 방법은 ‘당헌 개정’이다. 민주당은 전당원투표를 실시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의원총회에서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도리”라 표현했다. 두 광역단체장의 성범죄가 재보선의 원인임에도 오히려 ‘시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공천을 하겠다’는 논리다.

집권당으로서 무한 책임정치를 펼쳐야 할 정당이라면 후보 공천은 당연히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다. 하지만 도리어 책임정치를 앞세워 후보 공천의 명분으로 전당원투표를 실시했다. 책임정치가 원래 이런 것이던가? 당원들을 방패삼아 기어이 후보를 내겠다는 행태는 정당정치에 깊은 회의감을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민주당이 본래의 당헌대로 후보를 안 낼 것이라 믿은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당연히 후보를 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간 보여준 기형적 행태로 볼 때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는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다. 성범죄만이 아닌 그보다 더한 중대한 일로 재보선을 실시하더라도 ‘당헌이야 뒤엎으면 그만’인 것이다.

정당의 존립 목적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고, 선거라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야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대미문의 성범죄 사건으로 두 광역단체장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존립 목적만큼 지어야할 책임정치 또한 맞은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정부여당은 명실상부한 친페미니즘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민주당 대표 시절 “드디어 여성정책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 당당히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페미니즘 전성기로 떠오르던 여성계와 영(Young)-페미니스트 집단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를 볼 때 민주당의 여성단체 출신 페미니스트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떤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당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권력형 성범죄 혐의로 사회 질서와 당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음에도, 당헌까지 바꿔가며 재보선 후보까지 내는 이 모순된 상황에 말이다.

이런 가운데 5년 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한 발언도 재조명됐다. 당시 그는 새누리당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선거를 치르는데 드는 비용도 십 수억이 든다”며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해야한다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는 선거 비용이 십 수억에 그쳤다. 반면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비용은 그보다 몇 배에 달하는 규모다. 더욱이 지방선거가 국가 예산이 아닌 지자체 예산으로 치러지는 만큼,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서울·부산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은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성범죄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치르게 된다. 막대한 지자체 예산이 드는 재보선을 당헌까지 개정하며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집권당의 퇴행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 정치의 절정까지 드러낸다. 민주당은 스스로를 ‘민주진보개혁진영’이라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정당운영을 두고 과연 민주, 진보, 개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이는 정치문화의 발전에도 퇴보를 가져 온다. 여당은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치러질 재보선이 재집권이란 승리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계산이다. 그렇다하더라도 1년 임기 광역단체장 재보선을 위해 도덕적 윤리를 내팽개치는 행위는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그 모순된 이미지로 사회질서를 추락시킨다.

21대 총선 때도 정부여당은 대표의 다양성을 위해 도입된 비례대표제를 비례-위성정당 창당이란 꼼수로 정당정치를 후퇴시켰다. 무조건 선거만 이기만 된다는 식의 반민주주의적인 행태에 당과 당원은 하나가 됐다. 당헌을 뒤집어야 할 때마다 당원들을 앞세워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은 이젠 두렵기 까지 하다.

민주당은 당헌 개정안에 대해 ‘전당원투표를 통한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같은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아돌프 히틀러 같은 독재자도 정당한 선거절차를 준수했단 것이다. 거대여당의 이 같은 정치 행보는 책임정치의 실종은 물론이요, 정당정치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으로 만드는데 있다.

여당의 정당정치를 보노라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무력감마저 든다. 프랑스 작가 레이몽 아롱은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으로 변할 영구적인 위험 속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자기이익 추구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사회사상의 흐름』에서 토크빌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민주주의는 아첨의 정신을 전파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에 있어 아첨의 정신은 곧 선동(demagogy)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쁜 것일 수 있다.” 당원을 앞세운 민주당의 퇴행적 정당정치를 보며 아롱이 말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고뇌를 떠올린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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