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의료계 '수익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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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의료계 '수익만 생각'?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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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청구 번거로운 절차 많아 청구 포기 사례 늘어
개정안 "병원 전산시스템 통해 자동 청구", 의협 "개인정보 유출" 반대
"심평원 평가로 비급여 수익 줄기에 반대" 지적도
지난해 4월 시민단체들이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 시민단체들이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복잡한 증빙서류 구비 등의 문제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간소화가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결국 뒤로 물러선 결과가 나오면서 의료계가 수익만을 생각해 환자들의 불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병원이나 약국에서 관련서류들을 발급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해야하지만 증빙서류를 대부분 직접 발급받아야하고 보험설계사나 팩스를 통해 전달하거나 직접 보험사를 찾아가야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들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문제가 있고 결국 절차 때문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또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하다보니 의료기관에서의 서류 발급에 대한 행정부담과 함께 보험회사의 연간 수천만건의 보험금 청구서류 수기 입력과 심사로 인해 보험금 지급업무의 과도한 비용 발생 등 비효율적인 요소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는 종이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앱이나 이메일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보험사는 수작업으로 전산 입력을 해야하기에 사실상 종이 문서로 청구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개선을 권고했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구 간소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하고 표류해야했다. 이후 21대 국회에서는 고용진 의원과 함께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이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 법은 소비자가 병원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실손보험의 보험금을 자동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소비자가 병원, 약국 등에 진료비 계산서 등을 보험사에 전송하도록 요청할 수 있고 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서류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해 별도의 서류 증빙 없이 보험금을 받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사)소비자와함께,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등 소비자단체들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과 함께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가졌다. 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권익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와 각 이익단체들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10년 넘게 방치되어 소비자들은 여전히 복잡한 보험청구 과정과 번거로운 여러 증빙자료 구비 등으로 보험청구를 포기해 상당한 경제적 손실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이 온라인 전자증명서 발급을 확대하고 있고 병원 출입 시에도 자동인식 무인출입관리시스템 등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소비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 관련 종이서류를 발급받아야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언택트시대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보험청구 포기를 더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화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익을 위해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업무를 대행시킨다는 취지이지만 실상은 보험회사의 환자정보 취득을 간소화해 향후 보험금 지급 최소화로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며 결국은 민간보험사 이익만을 위한 악법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협은 "실손보험과 관련이 없는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 전송업무를 부당하게 전가시키는 행정규제 문제가 있고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인 진료정보의 유출 가능성,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책임소재 문제, 중계기관 위탁의 포괄적 위임에 따른 문제, 심평원 위탁에 따른 건강보험법 위임 범위 위반과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위반 문제 등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많은 법안"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의료기관이 환자를 대신해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서류로 제공되는 증빙자료를 환자의 요청에 따라 전자문서로 제공하는 것이고 일상에서 온라인으로 발급되고 있는 전자증명서에 대한 개인정보도 문제없이 잘 관리되고 있다"면서 의협의 '개인정보 유출' 주장을 '억지, 사실 호도'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국가나 환자가 의료기관에 강제할 권리가 없다', '개인의 보험 계약에 제3자가 나서는 문제가 있다'며 법안 처리를 하지 않았다.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과 행정 부담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지만 법안이 처리될 경우 심평원에 비급여 진료실태 및 수가 등이 공개되기 때문에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막기 위해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심평원이 서류전송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의료계 관계자가 직접 심평원 운영위에 참여해 심평원의 해당 업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지만 의료계는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의 복잡성 때문에 보험금을 받는 것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는 등 환자들의 불편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의료계와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해 법안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들을 설득시킬 힘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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