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제선왕의 종리춘과 문재인의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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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제선왕의 종리춘과 문재인의 추미애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12.0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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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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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전국시대, 맹자가 천하를 두루 여행할 때 만나 정치에 대해 의견을 나눈 사람이 제선왕이다. 그는 직하(稷下)에 학궁(學宮)을 설치하여 학자를 초빙하는 등 당시로는 드물게 보는 왕이었다. 사람들은 제자백가의 꽃이 피어 선진(先秦) 문화의 절정을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명군(名君)의 한 사람으로 꼽는다.

그러나 원래 제선왕은 훌륭한 왕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 위왕이 남겨준 유산을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뤘다. 그러자 자만심이 그를 어둠의 길로 안내했다. 술과 여자, 음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에도 격이 있다. 술과 여자가 음악이 합쳐지면 음란으로 방향을 튼다. 묵자도 그걸 경계했다.

그런 제선왕의 왕후가 된 종리춘(種離春)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녀라 불렸다. 하지만 천하 미인들만 모인 궁중에서 ‘이마는 몹시 높고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코와 목뼈가 심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등은 흡사 낙타와 같았고 머리털은 가을풀 같이 억세었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듯 새까맣게’ 생긴 외모로 왕후에 올랐으니 그 현명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40세가 넘어서 제선왕을 찾아와 결혼하자고 요청했다. 연회를 베풀고 있던 제선왕은 비위가 상할 만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배포 큰 사내였다. 종리춘을 들게 하고 그 사연을 물었다. 종리춘이 4가지 왕의 잘못을 말했다.

첫째는 진나라의 위협이 곧 닥쳐 올 텐데도 왕은 훌륭한 장수를 양성하지도 않고, 국경 방비에도 관심을 두지 않음이고, 둘째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신하가 있다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왕은 나랏일을 팽개치고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있으며, 셋째는 아첨꾼과 황당한 말만 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왕은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궐을 짓고 호화로운 누대를 쌓는 등으로 국고가 탕진됐다고 짚었다.제선왕은 종리춘의 손을 잡고 “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찌 나의 허물을 알 수 있었겠는가?”라며 연회를 작파했다. 이후 정신을 차린 왕은 세 치의 혀로 왕을 혼미하게 만드는 간신을 추방하고 충신들을 대거 등용하는 등 나라 전체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 나가며 새로운 길을 연다는 것, 이것은 덕이 충실하여 빛이 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생산적 비판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밀어붙이고야 마는 것은 더 더욱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추미애 장관은 종리춘의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에 들어섰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최종병기나 사약을 들고 들어왔다고 믿고 있다. 큰일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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