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女 고독한 죽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론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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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女 고독한 죽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론 거세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1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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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있어도 '부양의무자' 있으면 급여 신청 못 해
정부 '기준 폐지' 약속에도 지지부진 "살지 않는 가족 때문에 혜택 無"
"국가가 개인에게 복지 부담 떠안는 꼴, 폐지해야" 힘 실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 가족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 가족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최근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여성이 숨진 지 약 5개월만에 발견되고 발달장애인 아들이 노숙 중 사회복지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까지 구청 등이 아무 것도 몰랐던 일이 벌어지면서 현재의 '부양의무자기준'의 문제점이 다시 드러났다.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수급 자격을 제한하는 현 제도는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 뿐이라는 비판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지금이라도 공약을 지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 방배동에 살던 60대 여성 A씨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여성의 아들인 30대 B씨는 발달장애인으로 A씨 사망 후 인근 지하철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를 발견한 사회복지사가 A씨의 상황을 전하면서 A씨의 사망이 뒤늦게 알려졌다. A씨는 약 5개월 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족은 2018년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 주거급여를 받으며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임금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A씨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부양의무자로 되어 있는 이혼한 전 남편 등에게 자신의 상황이 전해지는 것을 꺼려해 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A씨의 두 자녀 중 B씨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왔고 다른 자녀는 이혼 후 전 남편이 양육하면서 소통이 끊긴 상태인데 생계급여등을 신청하려면 A씨의 부양의무자인 두 자녀의 소득조사가 이루어져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두 자녀의 개인정보제공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또 A씨는 2005년 뇌출혈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었지만 2008년부터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한 장기 체납상태로 인해 병원을 이용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지난 3월 전기요금, 4월 가스요금이 미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건보료 등이 장기 체납될 경우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등록되고, 보건복지부는 취약가구로 분류해 일선 지자체에 통보하게 되어 있지만 A씨는 주거급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이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 때문에 공과금이 밀려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 소식이 끊긴 자녀가 부양의무자로 규정되어 있어 부양의무자기준에 미치지 못해 급여 수령이 어려운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부양의무자기준은 당초 일정한 소득이 있는 부모, 자녀 등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도 부양의무자가 없어야만 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지난 2014년에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로 30대 두 딸과 어머니가 서로 부양의무자로 되어 있어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해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부양의무제 문제가 이슈가 됐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부양의무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해 8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5년간 농성이 진행된 광화문역 농성장을 방문해 '부양의무제 기준을 단기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18년 10월 주거급여 부양의무제기준은 폐지됐지만 생계급여의 경우 '2022년까지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기준을 완화할 계획'으로 그쳐 있으며 의료급여는 아예 아무런 계획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정부는 '건강보험과 다른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사건이 일어난 후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14일 "2인 가구도 돌봄대상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다"면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문제 해결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질타를 우회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반박하며 정부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16일 "부양의무자기준이 없었다면 A씨는 의료급여를 통해 병원을 이용하고 공공일자리가 없거나 치료받는 기간 동안 일을 쉬며 생계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사각지대를 조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발굴되는 위기가구 중 공적지원으로 연결되는 가구는 10%도 되지 않는다. 발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발굴해도 지원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없기 때문에, 부양의무자기준조차 폐지하지 못한 사회에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소득이 기준 이하임에도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이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하는 것 자체가 문제고, 이번 A씨의 경우처럼 의무자에게 연락이 가는 것를 부담스러워해 경제적 어려움에도 급여 신청을 기피하는 이들이 있다. 정부는 재정 문제를 거론하고 실제로 재정이 드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5% 정도의 빈곤층은 수용을 해야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국가가 개인에게 떠넘기며 빈곤층을 힘들게 하는 '사회적 차별'이다. 이 차별이 20년 넘게 지속됐다. 폐지 외에는 답이 없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다른 제도도 소용이 없게 된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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