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버팀목' 백기완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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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버팀목' 백기완이 떠나다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1.0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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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故 김용균씨의 빈소를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오른쪽)이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9년 故 김용균씨의 빈소를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오른쪽)이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은 물론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도 울려퍼지며 국제적인 민중가요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다.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노동운동가의 영혼결혼식에서 나왔던 이 노래는 바로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라는 시의 일부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부분을 인용해본다.

'(전략)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세월은 흘러가도/굽이치는 강물은 안다//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일어나라 일어나라/소리치는 피맺힌 함성/앞서서 가나니/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후략)'

그렇게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웠고 순우리말의 멋을 살린 문학 작품을 남겼던 '민주화 운동의 큰 어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오전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너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었던 그가 이제 먼 길을 떠난 것이다.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백기완 소장은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60년대 한일협정 반대 투쟁과 함께 민주화 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과 유신에 반대하며 옥고를 치렀고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폭로 등을 주도한 혐의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억압도 그의 길을 막지 못했다. 

1987년 6.10 항쟁과 개헌으로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민중후보로 독자 출마한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로 몸살이 계속되자 백 소장은 두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의 호소에도 야권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군사정권은 5년 더 연장이 된다. 1992년 그는 다시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하지만 이번에는 낙선한다.

그 후 백기완 소장은 '통일문제연구소'를 통해 재야운동에 앞장서고 노동자들, 빈민들이 싸우는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며 '거리의 투사'가 됐다. 특유의 하얀 갈기머리와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이를 누르려는 강자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 강함 속에는 부드러운 한글 말이 함께 했고 순우리말을 살린 글들을 많이 남겼다. 계속되는 투쟁으로 지쳐있던 이들에게 백기완 소장의 연설은 꾸짖음이자 격려였고 위안이었다. 지금은 일상어가 된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달동네' 등이 바로 백 소장이 전한 우리말이다.

하지만 그의 호소와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사망하고, KTX 여승무원들이 복직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일들이 계속됐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고 세월호에 탄 300여명이 하늘나라로 가고 김진숙 노동자가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가고, 노동자 김용균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벌어졌다. 고령의 나이에도 촛불집회의 자리를 지키고 김용균씨의 장례식에 참석해 오열했던 그였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삶이었지만 그 눈물은 결코 힘듦의 눈물, 약함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눈물이야말로 약자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그의 89년 인생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에 추모의 뜻을 표하고 그를 기리고 있다.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고, 약자가 짓밟히는 세상을 용납하지 않았던 그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더 와닿고 있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는 그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본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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