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노래를 잃은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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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노래를 잃은 바이올린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2.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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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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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그는 우선 잘 생겼으며 건강했고, 여러 가지 잡기에도 능했습니다. 다만 외형적 성격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는 아내에게 그를 힘줘서 소개했습니다. “최고 절친이지. 뭐든 잘하고, 모든 면에 성실한 사람이야. 내가 많이 배운다구.” 그는 친구의 덕담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과장된 것입니다.”

친구의 아내 또한 무척 상냥했습니다. “음성이 아주 매혹적이시네요. 노래도 잘 하시겠어요?” 친구도 거들었습니다. “노래뿐인가! 시 낭송도 기가 막혀.”

그는 친구 부부와 술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도 했고, 나중에는 시를 읊고, 여러 곡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친구 부부는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은 흔치 않아요.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됐어요.” “주위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자네가 아주 부러워. 정말 뛰어난 실력이야.”

연신 박수를 보내던 친구 아내가 감탄을 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악기도 다룰 줄 아세요?”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윽고 입을 뗐습니다.
“실은 학생 때부터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친구 아내는 다시 환호를 하며 얼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곧 낡고 오래돼 보이는 바이올린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마침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썼던 바이올린이 있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청해도 될까요?”

그러자 그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며 머뭇거렸습니다. 친구와 친구 아내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란 눈치를 채고 얼른 수습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하하! 한동안 하지 않은 모양인데, 안 해도 괜찮아. 내 아내가 자네의 음악 실력에 단단히 반한 모양이군.”

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바이올린을 무척 사랑했는데, 지금은 내가 연주를 해도 그 어떤 바이올린도 노래를 못할 거야.”
친구 부부 :  “....??”
그 :  “난 바이올린에 빠져있었고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지, 아내의 부모와 우리 부모가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 들고 나갔어, 바이올린을.”
친구 부부 : “멋진 연주를 해서 처가 사람들의 점수를 많이 땄을 것...?”

그는 과히 즐겁지 않고 오히려 곤란하기까지 한 추억을 소환해야했습니다.

“양가 어른들의 인사가 끝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내가 바이올린 연주를 했어요. 뭐, 내 바이올린 연주가 형편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말하길...으음... 자긴 바이올린을 정말 잘하는 사람을 몇 안다고 하더군. 아내 될 그녀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친구 부부는 더 이상 묻진 않았습니다. 그 후 그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을 잡기는커녕 누구를 만나도 바이올린의 바 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부모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그에겐 엄청난 상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 <빙점(氷點)>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森浦陵子)의 글 중 언뜻 생각나는 게 있어서... 제가 임의로 내용을 좀 바꿔 재구성해본 것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듣고 불쾌하거나 화가 나거나 기운을 잃거나 절망에 빠지는 수가 있는데요, 문제는 그 말을 한 사람은 상대에게 큰 적의가 없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뒤늦게 해명이나 사과를 하면 살짝 나아지긴 하겠지만 처음 받은 부정적 느낌은 영원히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 말이란 참 어렵습니다! 진짜 어렵습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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