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로 전락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상태바
'있으나 마나'로 전락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3.03 16:27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행 이후 괴롭힘 더 늘어, 기소율 0.36% 불과
처벌 규정 전무, 5인 이상 사업장만 적용 '신고해도...'
고용노동부 '처벌 규정' 반대, 국회 '적용 대상 추가' 논의 안 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2019년 7월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시민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부채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2019년 7월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시민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부채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오히려 늘어나고 기소율도 1%가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경우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직접적인 처벌 조항도 없어 폭행, 명예훼손 등이 성립되지 않은 이상 처벌을 할 수 없어 사실상 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2019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총 2130건, 월평균 355건이었으며 2020년에는 5823건 접수, 월평균 485건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오히려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법 시행 후 접수된 전체 사건 7953건 중 송치사건은 94건으로 1.2%에 불과했고 그 중 기소의견은 29건으로 전체 사건 대비 기소율이 0.36%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 측은 "0.36%만 기소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규모별로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이 4673건으로 전체 건수의 59%에 달했고 50~99인 사업장이 909건(11%), 100~299인 사업장이 1037건(13%), 300인 이상 사업장이 1323건(17%), 기타 11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는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벌어져도 신고조차 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직장 내 괴롭힘을 더 늘리는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현행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지만 법에 처벌 규정이 없고, 법 적용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와 사용자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어 골프장 캐디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있었고 공동주택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규제가 어려운 일 등이 발생했다.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골프장 캐디에 대해 노동청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이는 직접고용이 아닌 하도급 형태로 계약하는 특수고용직 업종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 첫 사례가 됐지만 골프장 측이 입사들에게 일괄 제출받은 '산재적용제외 신청서'로 인해 산재 적용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노동자 보호를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범위를 넓히고 처벌규정이 있어야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3자에 의한 괴롭힘으로부터의 노동자 보호 △4명 이하 사업장에 대한 적용 확대 △행위자(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규정 도입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권고했고 고용노동부는 '일부 수용' 의견을 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추진을 통해 사업주의 보호조치 대상을 현행 고객응대근로자에서 모든 근로자로 확대 추진하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겠다. 4명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행위자(가해자) 처벌규정 도입에 대해서는 "죄형법정주의 위반 가능성 및 고의성 입증 곤란 등의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 권리구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가해자-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는 더 심각하며 재정적 지출을 요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를 중장기과제로 미루기엔 적절치 않다"고 밝혔고 "ILO 제81호 '근로감독에 관한 협약' 및 제190호 '폭력과 괴롭힘 협약'은 노동관계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적절한 처벌 등 제재규정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위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 적절한 제재규정이 없는 한 규범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처럼 처벌을 두고 뜸을 들이는 동안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개정안도 행위자(가해자)의 대상을 '사장의 친인척'까지 늘리고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에 그쳤을 뿐,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나 적용 대상 확대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가 되어도 효과가 여전히 미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해도 기소가 될 확률이 지극히 낮고 처벌보다는 '중재'를 유도하는 환경도 아직 남아있어 법이 있어도 피해자들이 의지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강한 처벌 조항과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포함시키지 않는 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전혀 효과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현행 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고 신고 이후 불이익을 주는 것을 처벌하는 조항만 있다. 신고를 해도 처벌이 없으니 기소를 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괴롭힘을 신고해도 득이 되는 것이 없다는 반응이 많다. 내 권리가 법으로 보장된다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신고에 회의적이다. 소규모 사업장 피해자, 고용이 불안한 특수형태노동자, 경비노동자 등의 피해가 많은데 그들도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직장갑질119 등과 상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