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총장의 '국화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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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총장의 '국화 옆에서'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1.04.0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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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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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꽃, 바람, 흙, 동물, 인간 등 우주만물의 탄생은 그저 아무렇게나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존재는 홀로 자기 결정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명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 본질인 성(性)을 천명(天命)과 동일하게 보고 우주 만물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몸을 부대끼며 아웅다웅,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아간다.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라는 것은 엄숙한 진리다. 그런 의미에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소환해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몰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무서리가 내리면서 국화는 자신의 성(性)을 완성한다. ≪중용≫에서는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 국화에는 하늘의 소리에 응답하여 하늘로부터 받은 그 본성에 따르는 것이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率性之謂道)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에선 스스로 죽비를 내리치고 잘 다듬어 성찰하는 삶을 사는(脩道之謂敎) 가르침을 얻는다. 그것은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의 완성이며 하늘과 내가 하나가 될 때 이뤄질 수 있는 지고(至高)의 것이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다. 어떤 평자의 말처럼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 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임에 틀림이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의 지난 어둔 길, 가시밭길을 돌아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오로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계획된 길이었던 것 같아 예사롭지 않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세상 일은 하늘이 부르고 땅이 만들어 낸다. 국화처럼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우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이 될 수도 있는 그의 운명이 아닌가 한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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