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사고가 알려준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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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붕괴사고가 알려준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1.06.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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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시법주의' 원칙,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안 돼
'교통수단, 이용시설' 등 사업자 의무 삭제, 원청 사고 희생자 관련 책임 無
'노동자 희생 더불어 무고한 시민 희생도 책임져야' 개정 주장
지난 9일 일어난 광주 동구 학동 붕괴사고 현장. 사진=뉴시스
지난 9일 일어난 광주 동구 학동 붕괴사고 현장.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지난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지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사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관리감독 부재 등의 문제가 드러난 가운데 이번 붕괴사고가 지난 1월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를 확인시켜줬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봐주기'가 현장 노동자는 물론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철거를 진행하면서 굴삭기 무게를 지탱할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고 차량 통행 제한 없이 허술한 가림막만으로 현장을 막는 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인근에서 지난 4월 공사 도중 붕괴 사고로 2명의 인부가 숨졌고 안전조치 및 현장 관리 미흡이 원인으로 발표된 지 불과 2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 2019년 잠원동 붕괴 사고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에 대한 의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임택 광주시 동구청장은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건물을 해체하기 위해 성포대에 흙을 쌓아놓는데 여기에 계속 물을 뿌리는 등의 과정에서 옆에서 하중이 건물에 미치면서 붕괴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감리자가 현장에서 철저하게 관리 감독을 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구청에서 바로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철거 과장의 안전 문제를 사전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혀 관리감독이 소홀한 상황에서 순서에 맞지 않게 철거 작업을 한 것이 참사의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이 공사의 시공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10일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의 피해 회복, 조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도 제대로 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해지면서 원청 건설사, 철거 업체, 지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11일 "광주 동구청이 허가한 해체계획서에는 철거 건물 안전도 검사와 철거 공사계획, 현장 안전계획, 해체 감리 현황 등이 나와있지만 실제 철거 과정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철거 공사의 위험성 때문에 건축물 해체계획서를 작성하여 시행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이번 참사가 발생한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서류 따로, 작업 따로'의 어두운 관행이 있었다. 허가권과 관리 책임을 지는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행정과 안전 의무를 철저히 외면한 원청에게 엄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고는 우선 '행위시법주의'(행위를 한 때와 재판을 하는 때 사이 법규의 변경이 있는 경우, 행위를 한 때의 법을 적용하는 것) 원칙으로 인해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사고 사망자, 부상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가 없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생산ㆍ제조ㆍ판매ㆍ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해 각종 조치를 취할 의무를 갖도록 되어있다. 법 제정 과정에서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어지면서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 등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의무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의 경우 사고 희생자 및 부상자에 대해 사업주 및 책임자가 책임을 질 의무가 없고 이로 인해 법안의 사각지대가 형성이 되고 만 것이다.

강은미 의원은 1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 보면 감리자, 시공사, 해체 작업을 맡은 업체가 (처벌을) 받을 거고 현대산업개발이 여기에 하청을 줬기에 관리감독 여부를 살펴봐야 하지만 대부분 원청은 실제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 적용이 되지 않고 시행이 되더라도 건축물을 잘못 관리해 지나가는 행인이 다친 경우는 법에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 시민의 재해를 중대재해(처벌법)도 처벌할 수 없으면 그냥 과실치사 형사범으로 처벌해야하는 것이다. 제가 처음에 발의한 법안은 이번 건도 중대시민재해가 될 수 있는데 제정된 법안에는 이게 빠져 있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업체들과 노동자간의 문제였고 현장 노동자에 해당되는 문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인식됐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노동과 관련없는, 무고한 시민의 희생도 원청이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안전한 노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특정 노동자의 대상이 아닌, 모든 시민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 개정 논의의 당위성으로 굳어지고 있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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