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고질병 해결한 대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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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고질병 해결한 대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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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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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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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의 이미지는 강력하다. 어떤 카리스마는 절대적 권위보다 야만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녀는 혁신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잠룡시절, 변방에 서성거렸으나 대권을 잡자 용상을 박차 오를만큼 기세가 높았다. 꼴보기가 역겨웠던 소련은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며 빈정됐다. 그녀는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하고 1959년 보수당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연금과 보험, 교육 분야 등에서 경험을 쌓았으나 1975년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기 전까지 그저 변방의 참모에 불과했다.

1970년대 초반, 영국 정계는 주고받는 식의 정권 교체가 지속됐다.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나면 다음 선거에선 노동당이 되찾아 오는 식이었다. 권력이 오가는 중에서도 나라는 안정감을 유지 했으며 정치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품위을 유지했다. 이러는 사이 보수당과 노동당은 서로 차별성이 없어지게 됐다. 인기있는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사려고 하다보니 정책은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욕하면서 닮은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1974년 보수당이 패하자 대처가 어부지리로 출마한다. 변변한 경험이 없는 대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당당히 당대표가 된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당원들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다. 이는 ‘한번 갈아엎을 때도 됐다’고 생각한 국민의힘 당원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남성 정치인들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타협적인 당시의 정치판을 경악케 하는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언어들로 반대자들과 부딪혔다. 노동당이 앞세우던 사회주의 정책을 비난하면서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전부 질식시켜 영국 경제를 망친 주범이라고 몰아붙였다. 노조가 들고 일어나자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멘 총리와 정면대결을 불사했다. 가정주부 출신의 보수당 대표에게 당한 이들은 1979년 총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부동층을 끌어들인 대처에게 대패했다.

이후 그녀의 질주가 시작됐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인기는 올라갔다. 집권 후 긴축재정을 실시하였고, 국영기업 민영화, 정부 규모 축소, 소득세 감면, 실력 성과제도 도입 등을 추진했다. 1987년 총선거에 의해 3선에 성공했고, 20세기 영국 총리 중 가장 긴 11년 7개월의 재임기간을 지낸 최장수 총리로 역사에 남게 됐다.

전문가들은 대처의 성공이 식료품 가게 딸이라는 서민적 이미지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고질적 병폐였던 노조에 대한 강력하고 합리적인 대처, 국외자(局外者) 임을 부정하지 않는 정체성, 자기희생적인 이미지, 결단력 등을 꼽는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국외자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영역을 더 넓혀 나간 점이다. 단계별로 차이를 부각시켜 반대론자들과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덧없고 피상적인 대중적 인기 따위에는 영합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지금 이 정부는 대처가 집권하기 전 영국 사회의 고질병을 그대로 갖고 있다. 확대재정에 공무원 급증, 국가채무 증가, 노동 유연성 상실, 국영기업 방만 등이 그것이다. 국민들은 이 정부의 이런 정책에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바람을 몰고 온 이유들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새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하고 있다. 누가 대처가 그렇게 강력한 변화를 몰고 올지 알았겠는가. 이 대표라고 못하라는 법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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