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0년] 핵 끌어안을수록 주민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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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0년] 핵 끌어안을수록 주민은 고통
  • 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 승인 2021.12.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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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7세 나이로 ‘최고사령관’ 올라
선군정치서 당 주도 국정운영체제 전환 
국제제재-코로나19로 자력갱생에 한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1년 12월 30일 최고사령관에 올라 집권 10년을 맞았다. 사진은 군마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 사진=시사주간 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1년 12월 30일 최고사령관에 올라 집권 10년을 맞았다. 사진은 군마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 사진=시사주간 DB

[시사주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2011년 12월 19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특별 보도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리춘희 아나운서는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 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고 울먹였다.

그로부터 13일 만인 12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7세 아들인 김정은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며 최고 권좌에 올랐다. 20년이라는 후계자 시절을 거쳐 최고지도자에 오른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2년 만에 오른 그는 체제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집권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에 불안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집권 10년을 맞고 있다.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북한 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있고, 고립을 자초하는 자력갱생 노선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위-2021′ 국방발전전람회 개막식에서 특공무술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10월 11일 열린 ‘자위-2021′ 국방발전전람회 개막식에서 특공무술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집권 초기 걸림돌 판단 땐 무조건 처형

어린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 장악을 위해 던진 승부수는 당 주도의 국정운영 체제 부활이었다.

당 중심 국정운영은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통치방식이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군을 앞세운 ‘선군 정치’라는 기형적인 통치체제로 비대해진 군부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노동당 기구의 활동을 부활시키고 1980년을 끝으로 35년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노동당 대회와 당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를 활성화했다.

김정일 위원장 영결식 때 운구차를 호위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을 시작으로 군부 고위 인사를 수시로 교체하거나 강등 또는 처벌하는가 하면 2013년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2017년엔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했다.

집권 초기 김정은 유일지배체제 구축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면 처단했다. 그러면서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제도적으로 완성시키는데 주력했다. 

집권 5년 차인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당의 최고영도자인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됐고, 같은 해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정 전반을 운영하는 국무위원회를 신설,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선 헌법상 김정일에게 영원히 부여했던 당 총비서 직책까지 차지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김여정 부부장, 조용원 당비서 등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김여정 부부장, 조용원 당비서 등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주민들 충성도 선대 지도자에 비해 떨어져

어린 나이에 집권한 나머지 숙청을 통한 잠재적 도전세력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권력 공고화가 상당 수준 이뤄졌지만 경제난 심화로 주민들의 충성도는 선대 지도자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평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년 간 핵과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 개발과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주력했다.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운 그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경제특구들을 설치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접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선회하면서 2018년부터 이듬해 초까지 미국과 핵 담판 정상외교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의 핵 무력 완성에 대한 반발로 한층 강력해진 국제 사회의 제재가 지속된 가운데 2019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중국과의 교역이 봉쇄됐고 2020년엔 자연재해까지 덮쳐 북한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연도별 경제성장률이 2016년까지는 대체로 소폭이나마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017년부터는 줄곧 마이너스 성장세로 전환해 지난해에는 마이너스 4.5%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2019년부터 핵 억제력을 내세우며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 노선으로 돌아갔다.

자력갱생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내각 중심의 국가 관리 경제 체제에 힘이 실렸고 특히 당과 군 등 이른바 힘센 특수 기관들의 ‘노른자위 기업과 이익 독점’ 체제를 국가경제 틀 안에 가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도입된 시장경제 요소들이 후퇴하는 조짐도 보였다.

량강도에서 운행되는 목탄차. 자력갱생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시사주간 DB
량강도에서 운행되는 목탄차. 자력갱생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시사주간 DB

◆자력갱생 한계...김정은 스스로 고립 선택 

경제난 심화로 민심 이탈을 우려한 주민통제와 감시도 강화됐다.

북한 당국은 ‘비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독려하며 특히 지난해 12월엔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상물을 유포 또는 시청한 사람을 중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 ·후반에 태어난 이른바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 통제도 강화해 외부문물을 철저하게 배격하도록 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했다.

북한은 먹고사는 문제에 따른 내부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며 ‘김정은 주의’라는 독자적인 통치이념을 구상했지만 자력갱생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스스로 고립을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자력갱생은 이미 실패가 입증됐고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정책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5년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미관계가 개선될 수 없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없게 됐다. 

김 위원장은 핵은 핵대로 보유하겠다는 의사가 강하기 때문에 미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한계점에 노출됐다.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국제사회 제재 완화와 남북 협력 등을 통한 외부 자원을 유입시켜야 경제 회생이 가능한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미 대화를 통한 제재 완화라는 돌파구를 열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립을 자초할 것인지 선택할 때가 왔다. SW

ys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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